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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Writing26

어느 기다림의 끝에서 꽤 오랫동안 기다렸는데 결국 아무도 오지 않았다. 약속도 없이 헤어졌기에 온다는 것 자체가 사실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도 기다렸다. 나 여기서 기다린다고 알린적도, 기다림이 힘들다고 불평한 적도 없이 기다렸다. 기다린다는 마음만 가지고 있어도 꼭 올 것만 같아서 기다렸다. 나를 둘러싼 소리들을 외면하며 기다렸다. 똑바로 서서 흐트러지지 않으려 무던히도 애를 썼다. 애쓴 만큼 나아지지 않았고, 나아질 만큼 애를 쓰지도 않았던 걸까. 때로 휘청이며 중심을 잡느라 힘겨웠다. 그런데 기다리던 대상에 대한 기억을 잃어버렸다. 왜 기다리고 있었는지는 아예 떠올릴 방법이 없었다. 내 삶의 굴곡진 부분을 펴줄 수 있는 이를 기다린 것이었을까. 아니면 그이의 모진 시간들을 위로하기 위해 기다렸을까. 어느 날 누군가 .. 2020. 10. 23.
물로만 머리 감고 샤워하기 물로만 머리를 감은 지 거의 5주가 되어간다. 큰 아이가 지난 3월경부터 샴푸 없이 물로만 머리 감기를 시작해서 6개월쯤 되던 9월 초부터, 나도 과감히 시작했다. 궁금해서 큰 아이의 머리 냄새를 맡았지만 기분 나쁜 냄새가 나지는 않았다, 내 몸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큰 아이에 따르면 처음에는 끈적하고 찜찜한 느낌으로 불편한데 오래지않아 효과가 나타난다고 했었다. 그 효과라는 것이, 두피를 보호하는 천연 기름막이 유지되어 건조함으로 인한 비듬이나 가려움, 탈모 등이 현저히 줄어든다는 것이었다. 처음 3, 4 주 동안은 머리를 감아도 말끔한 기분은커녕 기름기로 인해 떡지는 느낌과 머리 냄새가 가시지 않는 듯했다. 그러다가도 물기가 마르면 그럭저럭 머리 감은 기분이 나는듯해서 좀 더 견뎌보자고 생각하며.. 2020. 10. 22.
사랑 깎기 이제 여름이 한껏 잦아들었는데 거칠고 게으른 기억 속에서, 노란색 몽당연필 모양의 사랑 하나를 본다. 가끔은 가을을 준비하느라 여름에 쏟아 놓은 추억들을 하나둘씩 주워 담는데, 그 뭉뚝한 사랑은 차마 담을 수가 없다. 그해 여름이 막 시작되려던 무렵의 어느 날, 내가 처음 봤던 그 사랑은 짙고 꽉 찬 심지와 단단하고 흠집 없는 샛노란 외모가 눈부신 그런 사랑이었다. 나는 덜컥 그 사랑을 움켜쥐었다. 그 어떤 모양의 그림도, 쓰기 어려운 이야기도 하염없이 그려내고 아름답게 써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그해 여름이 한창이던 어느 날, 손에 쥔 사랑이 제법 짧아졌음을 느꼈다. 짧아지고 금이간 심지와 나의 손톱 자국, 이빨 자국 가득한 지친 모습이었다. 그런데도 그 사랑이 마냥 원망스러웠다. 왜 이전과 .. 2020. 9. 23.
여름의 흔적-2012 세상이 넓어 갈 곳도 많고, 아직 젊어 할 일도 많은데 가끔은 마음 둘 곳 없는 느낌이 깊어 자꾸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게 된다. 머리 한 구석에는 아직도 풀지 못한 의문들이 가끔씩 되살아나 짧은 순간이나마 현실과 동떨어진 어떤 단맛을 보기도 하고...... 거침없이 망설임 없이 지내온 시간들. 때로는 무겁고도 처절하게, 때로는 가벼웁기가 먼지보다도 더해서 이리저리 휘청대며 끌리는 대로 휩쓸려 다니던 시간도 있었다. 장대비로 쏟아지는 비를 맞고 싶다. 쇼섕크 탈출 Shawshank Redemption에서 보여진 빗속의 환희와 같은 그런 강렬한 순간을. 끝없는 이 서부 캐나다의 평원을 무작정 달리고 싶다. 포레스트 검프가 그랬던 것처럼 어디에 있을지도 모를 나의 이상을 만나는 그러한 결론을. 인생은 어쩌면 .. 2020. 9. 12.
코로나19에 대한 나쁜 소식 A Bad News About Covid19 코로나19가 온 세계를 송두리째 흔들고 있다. 석학들은 이제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 올 것이라고 입에 개거품을 물고 소리를 치고 있고, 유명 투자전문도둑넘가들은 엄청난 대공항황이 닥칠 것이라고 떠들어대고 있다. 돌연변이가 생길 확률이 매우 높은 RNA형이고, 인수공통 (사람과 짐승 모두를 숙주-희생의 제물-로 삼을 수 있는) 바이러스다. 어렵게 개발된 백신과 치료제의 효능이 제한적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박쥐와 인간 사이의 2차 숙주가 아직 정확하게 확인되어 있지 않다. 심지어는 일부 때려죽일 놈의 정체불명의 조직들이 코로나19 바이러스를 탄생시켰고, 고의적으로 확산시켰다는 의혹을 받고 있기도 하다. 미국의 젊은 세대들은 코로나19를 "부머 리무버 (Boome.. 2020. 9. 11.
이발 작은 행복이야기-02 코로나바이러스로 온 세상이 몸살이다. 생존을 위한 식료품 매장을 제외한 거의 모든 서비스가 중단된 상태이다. 공원, 놀이터를 포함한 공공시설은 물론이고 쇼핑몰, 식당, 뷰티숍 등 일상생활 속에서 자주 이용하던 공간들의 문이 굳게 닫혀 있다. 그런 가운데, 배려심이 많은 소박한 캐나다 사람들은 차분하게 덤덤하게 보내고 있다. ​ ​ 내가 아는 몇 사람은 2개월 정도 이발을 하지 못해서 덥수룩해진 머리를 달고 있었다. "스스로 머리 깎기"를 시도하기엔 위험 부담이 너무 커서 감히 도전해보지 못한다. 가족들에게 부탁을 하고 싶어도, 망쳤을 때의 후환이 두려워 아무도 나서지 않을게 뻔해 보인다. 참을 수밖에 없다. ​ 하지만 나는 전혀 걱정이 없다. 지난 12년 동안 늘 그래왔듯이, 아내가.. 2020. 9. 10.
헌 옷 작은 행복이야기-01 연중 섭씨 25도 이상을 넘는 날이 30일을 조금 넘거나 심지어는 그보다 적은 해도 있는 이곳. 겨울이 지났다고 해서 굳이 두꺼운 옷들을 옷장이나 서랍에 깊숙이 가두어 두지 않는다. 가끔 5월이나 9월에도, 미친 듯이 눈이 내려 쌓이기도 한다. ​ 그렇기는 해도, 계절이 바뀔 때마다 두께나 모양, 기능이 다른 옷들을 꺼내어 입는 일은 어떤 설렘을 안겨주는 작은 행복이다. 해마다 입었던 헌 옷임에도 불구하고, 오랜만에 보는 눈에는, 새 옷을 득템 한듯한 신선함이 기껍다. ​ 겨울이 코앞 모퉁이를 힘차게 돌아 들어오려는 즈음, 두꺼운 옷들을 챙기며 느끼는 어떤 안도감은, 춥고 긴 겨울을 어렵사리 품어야 한다는 부담감을 덜어 주기에 충분하다. 나의 작은 행복은 헌 옷에도, 추운 겨울에도 .. 2020. 9. 10.
조금 무거운 메리 크리스마스 A Little Bit Depressed Merry Christmas 이제 곧 성탄절이 돌아온다. 낮은 곳에 오셔서, 몸소 참된 신앙의 길을 보여 주신, 하나님의 희생과 사랑을 되새겨본다. 유대인들만의 하나님에서, 모든 이들의 하나님으로 바꾸신 분. 나그네 된 가족이, 묵을 숙소조차 없어서, 마구간에 잠시 머물 때 태어나신 예수. 말먹이 통에 누이신 예수. 그 초라하고 궁색함이, 그 어떤 궁핍한 자들보다 덜하지 않았지. 가난하고 이름 없는 목수의 아들로 오셔서, 결국 강도 두 명 - 혹은 열혈당 투사들? - 과 함께, "유대인의 왕"이라는 죄명으로, 십자가에 달려 처형되셨어. 왜 하필 죄명이 "유대인의 왕"이었나. ​ 세상을 지배하던, 정치적, 종교적, 권력집단, 사두개파와 바리새파에게, 개혁적이고 획기.. 2020. 9. 10.
먹고 살기가 어려워진 이유 국민 소득, 첨단 기술 다 좋아졌는데, 왜 이렇게 살기가 힘들까? 가장 혼자 벌어도 그럭저럭 살았는데, 지금은 왜 맞벌이를 해도 빠듯한 거야? 회사 나간 사람들, 지금 뭐하며 살고 있을까? 관료들, 정치인들 왜 저런 식으로 정책을 세우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나는 경제와 관련된 공부를 해본 적도 없고, 관심도 없었습니다. 사무직 근로자로서, 대부분 상위권 임금을 받으며 30년 가까이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돈 걱정이 떠나지 않는다는 것이 조금 불편했습니다. 재테크를 잘못했나, 무의미한 소비를 많이 했을까 라고 생각도 해봤지만 마땅히 떠오르는 것은 없었습니다. 다들 이런가 라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사실, "헬조선", "N포 세대" 등은 이미 오래전부터 자주 쓰이던 단어였고, 세상이 바뀌었다고 생.. 2020. 8. 21.
1980년 5월 15일 뜬금없이 끼어든 신용산 중 내가 학교 운이 지지리도 없다고 여기게 된 시발점은 중학교 배정 때부터였다. 집 주변의 선린, 용산, 배문 다 제치고, 뜬금없는 신용산 중학교를 배정받게 되었다. 그 학교가 어디에 있는지도 잘 몰랐다. 신용산, 한강, 오산, 준경 등은 용산의 한강로를 중심으로 좌우에 위치하거나, 조금 더 동쪽으로 들어간 곳에 있는 학교들이었다. 나의 주무대인 원효로 라인과는 심리적으로, 거리상으로도 먼 곳이었다. "누군가의 착각이나 실수가 아니었을까"라고 짐작해 본다. 버스 노선이 지금보다 덜 촘촘하던 시절, 교통편이 많은 남영동으로 걸어서 나가거나, 버스를 타고 나가야 했다. 아니면 용산 청과물시장을 가로질러 한강로로 나가야 했다. 거기서 다시 동부이촌동으로 가는 진아교통 38번을 (버스 회.. 2020. 8.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