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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Writing/수필 Essay

물로만 머리 감고 샤워하기

by Deposo 2020. 10. 22.

   물로만 머리를 감은 지 거의 5주가 되어간다.

 

   큰 아이가 지난 3월경부터 샴푸 없이 물로만 머리 감기를 시작해서 6개월쯤 되던 9월 초부터, 나도 과감히 시작했다. 궁금해서 큰 아이의 머리 냄새를 맡았지만 기분 나쁜 냄새가 나지는 않았다, 내 몸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큰 아이에 따르면 처음에는 끈적하고 찜찜한 느낌으로 불편한데 오래지않아 효과가 나타난다고 했었다. 그 효과라는 것이, 두피를 보호하는 천연 기름막이 유지되어 건조함으로 인한 비듬이나 가려움, 탈모 등이 현저히 줄어든다는 것이었다.

 

   처음 3, 4 주 동안은 머리를 감아도 말끔한 기분은커녕 기름기로 인해 떡지는 느낌과 머리 냄새가 가시지 않는 듯했다. 그러다가도 물기가 마르면 그럭저럭 머리 감은 기분이 나는듯해서 좀 더 견뎌보자고 생각하며 참았다. 물기를 닦은 수건에서는 상큼하지 않은 정수리 냄새가 났다. 간혹 집사람한테 머리 냄새 좀 맡아 달라는 불편한 요구를 하기도 했는데, 내가 느끼는 것보다는 머리 냄새가 심하지 않다는 대답을 들었다. 그 말에 용기를 얻어 지속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4주가 넘어설즈음,  물로 머리카락과 두피를 마사지하듯이 부드럽게 씻어내고, 물을 채운 대야에 2, 3 큰 술 정도의 식초를 섞어서 다시 머리를 감은 후, 깨끗한 물로 헹궈냈다. 식초 때문인지 머리카락이 한결 부드러워지고 개운했다. 라면 끓일 때 막판에 식초 몇 방울 넣으면, 기름기가 가신 국물이 깔끔해지고, 면도 훨씬 부드럽고 쫄깃하다더니 머리카락에 미치는 영향도 비슷한가 보다. 내가 느끼는 머리 냄새의 정도도 훨씬 덜하게 느껴졌다. 수건에서도 냄새가 덜 났다. 피부가 매일 매일 세제에 의해 강탈당하는 기름기를 서둘러 보충하기 위해 과도하게 배출하지 않는 신호로 여겨졌다.

 

   용기를 조금 더 보태서 한 술 더 뜨기로 했다. 샤워도 물로만 하기로 한 것이다. 물론 주요 부위는 물로만 씻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 인공 향이 첨가되지 않은 천연 비누로 씻고 나머지 부위는 물로만 마사지하듯이 씻었다. 샤워 세제로 씻을 때의 미끈함, 향기, 과도한 거품 등은 없다. 그런데 몸에서 자연적으로 생성되는 기름막이 제거되지 않아서 인지 가려움이 전혀 없다. 난방 가동 시간이 잦아지고 길어짐에 따라, 바디 로션을 발라도 공기가 건조해져서 가끔씩 심하게 가려울 때도 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흔히 보이던 피부 각질도 거의 없다시피 눈에 띄게 줄었다. 샤워 후에 무취의 무자극 로션을 발라주면 피부에 대한 자극이나 공격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Photo by LOGAN WEAVER on Unsplash

 

   화학 제품을 쓰느냐 안쓰냐는 어쩌면 기분 문제 일수도 있다. 주방 세제를 안쓰면 무수한 세균에 노출되어 알게 모르게 감염될지도 모른다는 그런 찜찜한 기분 말이다. 향기를 뿜기 위해 사람들은 향수 외에도 섬유 유연제, 샴푸, 샤워젤, 헤어젤, 헤어스프레이, 로션, 구강 청정제, 청결제 등을 수시로 사용하며 뒤집어쓰다시피 하고 있다. 가끔은 누군가의 값싸고 자극적인 향이 너무 진해서 불편함을 느낄 때도 있다. 반면 아름다운 여인이 찰랑거리는 머리카락을 휘둘러댈 때 풍기는 풍성한 향이 설렘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의 신체는 자연적으로 청결을 유지하고 보호하는 능력을 원천적으로 보유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청결과 미용을 빌미로 자본주의적 상업주의가 무차별적으로 뿌려 놓은 인공 화학물질들을 필요 이상으로 사용하고 있지는 않은지 냉철하게 주변을 둘러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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