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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Writing/의견 Opinion

조금 무거운 메리 크리스마스

by Deposo 2020. 9. 10.

A Little Bit Depressed Merry Christmas

   이제 곧 성탄절이 돌아온다. 낮은 곳에 오셔서, 몸소 참된 신앙의 길을 보여 주신, 하나님의 희생과 사랑을 되새겨본다. 유대인들만의 하나님에서, 모든 이들의 하나님으로 바꾸신 분. 나그네 된 가족이, 묵을 숙소조차 없어서, 마구간에 잠시 머물 때 태어나신 예수. 말먹이 통에 누이신 예수. 그 초라하고 궁색함이, 그 어떤 궁핍한 자들보다 덜하지 않았지. 가난하고 이름 없는 목수의 아들로 오셔서, 결국 강도 두 명 - 혹은 열혈당 투사들? - 과 함께, "유대인의 왕"이라는 죄명으로, 십자가에 달려 처형되셨어. 왜 하필 죄명이 "유대인의 왕"이었나.

 

Photo by Joanna Kosinska on Unsplash

 

   세상을 지배하던, 정치적, 종교적, 권력집단, 사두개파와 바리새파에게, 개혁적이고 획기적인 그분이 일으키고 다니는 변화의 바람이, 달가웠을 리가 없었겠지. 어떠한 형태의 종교적 일탈이나, 교리에 대한 불순종을, 결코 용납할 수 없었겠지. 그걸 용납하는 순간, 그들의 존재 기반은 사라졌을 테니까.

   가난하고, 병들고, 버림받고, 소외된 자들에게, 그들도 하나님의 귀한 자녀임을 일깨우고 다녔잖아. 정결하다고, 선택받았다고, 잘난척하며 그 소외된 자들을, 구원받지 못할 죄인 취급하던 그들이, 그러한 예수의 모습을 보며 어떤 심정이었을까. 종교적으로 완전한, 정결하고 고귀한 분을, 정치적인 죄목인 "유대인의 왕"이라고 낙인찍어 죽였던거지.

   지금은 어때? 뭐 그때와 크게 다른게 있나? 아, 아니다 크게 다르긴 하지. 최근 몇 년간 "일부" 목사들 그리고 중들이 보여준, 믿기지 않는 행동들을 봤잖아. 목사들이나 중들이나, 돈과 욕정의 노예가 되어, 추하고 더러운 행동들을 서슴지 않더구먼. 일부라고 하지 말자. 그 "일부"를 못 막고, 못 없애는 "대부분"은 더 큰 문제인 것 같다. 뭔가 의미 있는 일 좀 하려고 해도, 어떤 사연이든, 너무도 답답해서 호소 좀 하려고 해도, 버려지고 소외된 이들을 돌보려고 해도, 평화와 화해를 말하려고 해도, 이 모두가 포퓰리즘이고, 종북이고, 좌파고, 이단이라고 손가락질당하고, 비난받잖아. 우리 사는 곳이, 깨끗해지고, 정의로워지고, 공평해지기를, 원치 않는 이들이 참 많은 것 같아. 아니, 그런 이들의 힘이 정말 강한 건 아닐까?

   이런 때에, 예수의 정신을 심장에 품고, 온몸을 바쳐서 전파해야 할 이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 건지. 어디에 있는 건지. 그분이 했던 그 행동들을, 그저 따라 하면 될 텐데. 쓴잔은 다 엎어 버리고, 은혜, 축복, 영광, 부활, 영생의 달콤한 잔들만 달라고 아우성이잖아. 무슨 죄든 짓고 나서, 회개했다고 하면 그만인, 너무나도 자기중심적인 종교. 이타는 없고, 배타와 독선만 가득한 막무가내 종교. 이런 신앙으로 물들여진 우리와 같은 이들을, 그래도 구원하려는 분의 마음은 어떤 심정일까.

   나 자신, 기독교인이라고 말하기가 참 창피하고 두렵다. 감당하기도, 실천하기도 어려워서, 아직 발도 못 내민, 그 "구원으로 가는 길"에, 언제쯤이나 들어설 것인지 알 수가 없어. 아마 끝내 나서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할지도 몰라. 구원은 받고 싶은데, 그에 상응하는 희생과 의무는, 감당하기가 싫어, 솔직히. 좀 쉬운 방법이 없을까?

 

Photo by Christoph Schmid on Unsplash

 

   올해도 그 어리신 분이 다시 오신다. 이런 인간들을 어떻게든 구원해 보겠다고, 말먹이통 마른풀 위에 초라하게 오셔서, 또 고초 당하고, 또 처형당하고. 물과 같으신 분이 또 오신다. 그 마음과 몸이 늘, 더 낮은 곳으로 향하는 분. 눈앞에 보이지 않아도, 온 세상천지와 하늘과 바다를 아우르는 분. 눈, 비, 구름, 강물 등 갖가지 모양으로 우리와 함께 하는 분. 목마른 생명들을 살리는 분. 추위에 얼고, 강한 열기에, 수증기가 되어 증발할지라도, 그의 존재는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 분. 그리고 맑고 투명하여, 나를 비추면, 나는 보지 못하는 내 모습을, 보여주는 분. 온 세상 더럽고 추한 것들을, 깨끗이 씻어내는 분.

   마라나타, 예수여 오소서. 오셔서 구원해 주소서.

 

2019.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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