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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Writing/수필 Essay7

겨울 바람 너머 오로라, 북두칠성 그리고 집 어느 겨울 밤, 몇일 전에 보였다던 오로라가 너풀거리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뒷뜰로 나가 보기로 했다. 아직 밖으로 나가지 않았는데도 윙윙 거리는 겨울 바람의 성화가 대단하다는걸 알 수 있었다. 블라인드를 젖히고 패티오 문을 슬그머니 열었다. 추위를 가득 머금은 강한 바람이 기다리고 있었다는듯 왈칵 쏟아져 들어왔다. 나를 쫓던 고양이 두 녀석은 움찔하며 한 걸음 뒤에 멈춰 서있었다. 연신 코를 씰룩 거리며 어두운 뒷뜰과 내 눈치를 번갈아가며 살피고 있었다. 밖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은, 요란스럽게 차가운 이 밤에도 여전한듯 했다. 나는 서둘러 데크 위로 발을 내딛고서 문을 닫았다. 두 녀석은 유리 너머에 우두커니 서있었다. 매번 당하는 일이지만 수긍하기 어렵다는듯한 표정이었다. 곧 나른한 늘.. 2021. 12. 16.
1년 동안 켜 두었던 마음 작은 행복이야기 - 03 올해 "가을이"는 예년보다 조금 늦게 이곳을 떠났다. 뒤이어 찾아온 "겨울이"는 성깔 있는 아이였다. 지난주 내내 눈을 뿌렸다. 그렇다고 펑펑 내릴 만큼 뿌리지는 않았다. 그렇게 찔끔거리듯 뿌리던 눈을, 결국 지난 24일 토요일에는 막판 떨이하듯 마구 쏟아부었다. 2020 겨울이의 첫인사였다. 울타리 나무의 잎들이 올해에는 유난히도 끈질기게 달려있다. 늦게 떠난 가을이 때문인지 방심하고 있다가 불쑥 나타난 겨울이의 첫인사에 적잖이 당황했을 것이다. 가만히 주위를 둘러보니 그건 비단 울타리 나무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동네 이곳저곳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다른 나무들도 마찬가지였다. 낙엽이 아직 다 지지 않았었구나. 작년 성탄절 전에 LED 전구를 설치했었다. 매년 그 맘때가 되면 아무.. 2020. 10. 28.
물로만 머리 감고 샤워하기 물로만 머리를 감은 지 거의 5주가 되어간다. 큰 아이가 지난 3월경부터 샴푸 없이 물로만 머리 감기를 시작해서 6개월쯤 되던 9월 초부터, 나도 과감히 시작했다. 궁금해서 큰 아이의 머리 냄새를 맡았지만 기분 나쁜 냄새가 나지는 않았다, 내 몸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큰 아이에 따르면 처음에는 끈적하고 찜찜한 느낌으로 불편한데 오래지않아 효과가 나타난다고 했었다. 그 효과라는 것이, 두피를 보호하는 천연 기름막이 유지되어 건조함으로 인한 비듬이나 가려움, 탈모 등이 현저히 줄어든다는 것이었다. 처음 3, 4 주 동안은 머리를 감아도 말끔한 기분은커녕 기름기로 인해 떡지는 느낌과 머리 냄새가 가시지 않는 듯했다. 그러다가도 물기가 마르면 그럭저럭 머리 감은 기분이 나는듯해서 좀 더 견뎌보자고 생각하며.. 2020. 10. 22.
여름의 흔적-2012 세상이 넓어 갈 곳도 많고, 아직 젊어 할 일도 많은데 가끔은 마음 둘 곳 없는 느낌이 깊어 자꾸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게 된다. 머리 한 구석에는 아직도 풀지 못한 의문들이 가끔씩 되살아나 짧은 순간이나마 현실과 동떨어진 어떤 단맛을 보기도 하고...... 거침없이 망설임 없이 지내온 시간들. 때로는 무겁고도 처절하게, 때로는 가벼웁기가 먼지보다도 더해서 이리저리 휘청대며 끌리는 대로 휩쓸려 다니던 시간도 있었다. 장대비로 쏟아지는 비를 맞고 싶다. 쇼섕크 탈출 Shawshank Redemption에서 보여진 빗속의 환희와 같은 그런 강렬한 순간을. 끝없는 이 서부 캐나다의 평원을 무작정 달리고 싶다. 포레스트 검프가 그랬던 것처럼 어디에 있을지도 모를 나의 이상을 만나는 그러한 결론을. 인생은 어쩌면 .. 2020. 9. 12.
이발 작은 행복이야기-02 코로나바이러스로 온 세상이 몸살이다. 생존을 위한 식료품 매장을 제외한 거의 모든 서비스가 중단된 상태이다. 공원, 놀이터를 포함한 공공시설은 물론이고 쇼핑몰, 식당, 뷰티숍 등 일상생활 속에서 자주 이용하던 공간들의 문이 굳게 닫혀 있다. 그런 가운데, 배려심이 많은 소박한 캐나다 사람들은 차분하게 덤덤하게 보내고 있다. ​ ​ 내가 아는 몇 사람은 2개월 정도 이발을 하지 못해서 덥수룩해진 머리를 달고 있었다. "스스로 머리 깎기"를 시도하기엔 위험 부담이 너무 커서 감히 도전해보지 못한다. 가족들에게 부탁을 하고 싶어도, 망쳤을 때의 후환이 두려워 아무도 나서지 않을게 뻔해 보인다. 참을 수밖에 없다. ​ 하지만 나는 전혀 걱정이 없다. 지난 12년 동안 늘 그래왔듯이, 아내가.. 2020. 9. 10.
헌 옷 작은 행복이야기-01 연중 섭씨 25도 이상을 넘는 날이 30일을 조금 넘거나 심지어는 그보다 적은 해도 있는 이곳. 겨울이 지났다고 해서 굳이 두꺼운 옷들을 옷장이나 서랍에 깊숙이 가두어 두지 않는다. 가끔 5월이나 9월에도, 미친 듯이 눈이 내려 쌓이기도 한다. ​ 그렇기는 해도, 계절이 바뀔 때마다 두께나 모양, 기능이 다른 옷들을 꺼내어 입는 일은 어떤 설렘을 안겨주는 작은 행복이다. 해마다 입었던 헌 옷임에도 불구하고, 오랜만에 보는 눈에는, 새 옷을 득템 한듯한 신선함이 기껍다. ​ 겨울이 코앞 모퉁이를 힘차게 돌아 들어오려는 즈음, 두꺼운 옷들을 챙기며 느끼는 어떤 안도감은, 춥고 긴 겨울을 어렵사리 품어야 한다는 부담감을 덜어 주기에 충분하다. 나의 작은 행복은 헌 옷에도, 추운 겨울에도 .. 2020. 9. 10.
아버지들은 소리없이 운다 캐나다의 “아버지의 날”은 매년 6월 셋째 주 일요일이다. 2020년 아버지의 날은 지난 6월 21일 일요일이었다. 그저 나약하고 여린 사람인데, 가족들 앞에서는 강인하고 단호한 사람이 된다. “사랑한다”는 말을 잘 못해서 “멋지다” 정도로 대신하는 인지 부조화 (Cognitive Dissonance)의 존재들이다. 가족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인간들이다. 집에서는 무뚝뚝한데, 친구들과 어울릴 때면 세상 멋지고, 재미있고 허물없는 사람이다.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어서, 잔소리가 많다. 그러다 갑자기 알아서 잘할 거라고 뜬금 없이 아량을 베풀기도 한다. 사실 아버지들도 어떤 것이 옳은 길인지 잘 모른다. 정의롭고 양심적으로 살라고 하다가도 약삭빠르고 간교하게 살기를 원하기도 .. 2020. 8.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