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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

이웃집 클로이-04 조나단은 41살의 남성이다. 알버타주 북부에 위치한 한 원유 공장에서 프로젝트 관리 매니저로 근무하고 있다. 그 원유 공장은 알버타 오일 앤 가스 컴퍼니 (Alberta Oil & Gas Company) 소유이다. 조나단은 엔지니어링 및 시공 전문 회사인 이피씨 스페셜리스츠 (EPC Specialists)의 직원으로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는 원유 생산량을 늘리는 작업이다. 18살이 되는 해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산업 전기기사 수습직으로서 처음 일을 시작하여 23년간 석유산업분야에서 일을 해오고 있는 베테랑이다. 원유 가격의 상승과 하락에 따라 해고와 재취업을 숱하게 반복하면서도, 동료나 상사들과의 유대 관계가 두텁고 신임이 높아서 오랜 기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금테.. 2021. 1. 9.
이웃집 클로이-03 앤은 가끔 조나단과 전화 통화를 한다. 앤이 손님을 맞이하거나, 숙박 손님이 떠난 후 뒷정리를 하느라 바쁠때는 조나단이 건 전화를 받지 못하기도 한다. 조나단은 클로이의 안부가 궁금해서 전화로 확인하곤 한다. 클로이만 생각하면 그저 안쓰러울뿐이다. 클로이의 친엄마인 앤은 에어비엔비로 생계를 꾸리고 있다. 조나단은 클로이의 친아빠지만 지금은 함께 살지 않는다. 컴퓨터 게임을 즐겨하는 앤에게는, 늘 집에 있으면서 할 수 있는 에어비엔비 운영이 천직인냥 여겨진다. 1층에 있는 서재를 개조한 방 1개와 워크아웃 형태로 된 지하에 있는 방 2개를 포함해서 모두 3개의 방을 손님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지하에는 욕조가 딸린 욕실과 간단한 취사 시설이 되어 있어 가족이나 4명 정도의 일행이 머물기에 적합하다. 워크아웃.. 2020. 12. 28.
이웃집 클로이-02 챨스릿지 커뮤니티는 대략 1970년대 중반에 형성된 동네이다. 당시의 방식대로, 커뮤니티 내에 같은 모양으로 지은 집은 단 한 채도 없다. 돈 할아버지와 패트리샤 할머니 둘이 사는 집은, 그 주변의 집들과 마찬가지로 1975년에 지어진 2층 집이다. 현재 70대 중반인 이 노부부가 결혼하면서, 새로 지은 지금의 집으로 입주한 이후 40여 년 동안 살고 있다. 그동안 딸 둘과 아들 둘이 모두 장성하여 독립해 나갔지만 이들은 가족들의 모든 추억을 간직한 채 그 집을 지키며 살고 있다. 40여 년의 세월만큼 자란 커다란 나무들이 둘레에 많다. 그런 나무들 사이로 크고 작은 새들의 지저귐과 다툼, 청설모를 닮은 다람쥐와 귀엽지 않은 토끼들의 조심스러운 출몰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노부부의 집 서쪽에는 클로이가,.. 2020. 12. 18.
이웃집 클로이-01 클로이는 캘거리의 챨스릿지 커뮤니티에 살고 있는 20살의 여성이다. 눈처럼 흰 피부에 허리까지 내려오는 눈부신 금발과 보는 이의 시선을 빨아들이는 짙은 파란색 눈을 가지고 있다. 키는 165 정도이고, 요란하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풍만한 가슴과 몸매가 드러나는 꽉 끼는 흰색 티셔츠와 밝은 색의 청바지를 즐겨 입는다. 클로이가 신는 신발은 대부분 하얀색 운동화다. 클로이의 집은, 챨스릿지 로드와 챨스릿지 힐 도로가 만나는 삼거리의 한쪽 모서리에 있는 서향집이다. 그녀의 방은 집의 정면 쪽에 있어서 서쪽을 바라보는 위치에 있다. 멀리 지평선에 나지막이 들쭉날쭉 솟아 있는 록키 산맥이 한눈에 들어온다. 집 앞의 챨스릿지로드 아래로는 경사진 내리막 풀밭이 펼쳐져 있다. 100여 미터 정도 내려간 그 풀밭 끝에는.. 2020. 12. 10.
1년 동안 켜 두었던 마음 작은 행복이야기 - 03 올해 "가을이"는 예년보다 조금 늦게 이곳을 떠났다. 뒤이어 찾아온 "겨울이"는 성깔 있는 아이였다. 지난주 내내 눈을 뿌렸다. 그렇다고 펑펑 내릴 만큼 뿌리지는 않았다. 그렇게 찔끔거리듯 뿌리던 눈을, 결국 지난 24일 토요일에는 막판 떨이하듯 마구 쏟아부었다. 2020 겨울이의 첫인사였다. 울타리 나무의 잎들이 올해에는 유난히도 끈질기게 달려있다. 늦게 떠난 가을이 때문인지 방심하고 있다가 불쑥 나타난 겨울이의 첫인사에 적잖이 당황했을 것이다. 가만히 주위를 둘러보니 그건 비단 울타리 나무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동네 이곳저곳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다른 나무들도 마찬가지였다. 낙엽이 아직 다 지지 않았었구나. 작년 성탄절 전에 LED 전구를 설치했었다. 매년 그 맘때가 되면 아무.. 2020. 10. 28.
HQ 해리 쿼버트 사건의 진실을 읽고 2018년 가을쯤, "YG와 JYP의 책걸상"이라는 팟캐스트를 통해 프랑스 작가인 조엘 디케르와 이 책에 대해 듣게 되었다. 그리고 2년이 다되어서야 읽기 시작했다. "만남"은 세상 모든 이야기의 시작이다. 해리는 놀라와 제니를 만났고, 제니는 트래비스를, 놀라는 루터와 엘리야를 만났고 그리고 마커스는 해리를 만나서 극적인 이야기를 만들어 갔다. 그리고 그 만남들은 또 기억이라는 방법으로 각자에게 남았다. 때로는 생존해 있는 기억들과의 만남으로 잠시 행복해지기도 하고 침울해지기도 한다. 이 이야기의 많은 부분들이 회상의 형식으로 그려졌다. 비록 우리의 기억이 잘 보존되어 있다는 보장은 없지만, 과거에 대한 나의 생각을 가장 나답게 표현하는 방법이 바로 우리의 기억이 아닐까. 해리가 아직 어린 놀라와 함께.. 2020. 10. 28.
어느 기다림의 끝에서 꽤 오랫동안 기다렸는데 결국 아무도 오지 않았다. 약속도 없이 헤어졌기에 온다는 것 자체가 사실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도 기다렸다. 나 여기서 기다린다고 알린적도, 기다림이 힘들다고 불평한 적도 없이 기다렸다. 기다린다는 마음만 가지고 있어도 꼭 올 것만 같아서 기다렸다. 나를 둘러싼 소리들을 외면하며 기다렸다. 똑바로 서서 흐트러지지 않으려 무던히도 애를 썼다. 애쓴 만큼 나아지지 않았고, 나아질 만큼 애를 쓰지도 않았던 걸까. 때로 휘청이며 중심을 잡느라 힘겨웠다. 그런데 기다리던 대상에 대한 기억을 잃어버렸다. 왜 기다리고 있었는지는 아예 떠올릴 방법이 없었다. 내 삶의 굴곡진 부분을 펴줄 수 있는 이를 기다린 것이었을까. 아니면 그이의 모진 시간들을 위로하기 위해 기다렸을까. 어느 날 누군가 .. 2020. 10. 23.
사랑 깎기 이제 여름이 한껏 잦아들었는데 거칠고 게으른 기억 속에서, 노란색 몽당연필 모양의 사랑 하나를 본다. 가끔은 가을을 준비하느라 여름에 쏟아 놓은 추억들을 하나둘씩 주워 담는데, 그 뭉뚝한 사랑은 차마 담을 수가 없다. 그해 여름이 막 시작되려던 무렵의 어느 날, 내가 처음 봤던 그 사랑은 짙고 꽉 찬 심지와 단단하고 흠집 없는 샛노란 외모가 눈부신 그런 사랑이었다. 나는 덜컥 그 사랑을 움켜쥐었다. 그 어떤 모양의 그림도, 쓰기 어려운 이야기도 하염없이 그려내고 아름답게 써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그해 여름이 한창이던 어느 날, 손에 쥔 사랑이 제법 짧아졌음을 느꼈다. 짧아지고 금이간 심지와 나의 손톱 자국, 이빨 자국 가득한 지친 모습이었다. 그런데도 그 사랑이 마냥 원망스러웠다. 왜 이전과 .. 2020. 9. 23.
먹고 살기가 어려워진 이유 국민 소득, 첨단 기술 다 좋아졌는데, 왜 이렇게 살기가 힘들까? 가장 혼자 벌어도 그럭저럭 살았는데, 지금은 왜 맞벌이를 해도 빠듯한 거야? 회사 나간 사람들, 지금 뭐하며 살고 있을까? 관료들, 정치인들 왜 저런 식으로 정책을 세우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나는 경제와 관련된 공부를 해본 적도 없고, 관심도 없었습니다. 사무직 근로자로서, 대부분 상위권 임금을 받으며 30년 가까이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돈 걱정이 떠나지 않는다는 것이 조금 불편했습니다. 재테크를 잘못했나, 무의미한 소비를 많이 했을까 라고 생각도 해봤지만 마땅히 떠오르는 것은 없었습니다. 다들 이런가 라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사실, "헬조선", "N포 세대" 등은 이미 오래전부터 자주 쓰이던 단어였고, 세상이 바뀌었다고 생.. 2020. 8. 21.
아버지들은 소리없이 운다 캐나다의 “아버지의 날”은 매년 6월 셋째 주 일요일이다. 2020년 아버지의 날은 지난 6월 21일 일요일이었다. 그저 나약하고 여린 사람인데, 가족들 앞에서는 강인하고 단호한 사람이 된다. “사랑한다”는 말을 잘 못해서 “멋지다” 정도로 대신하는 인지 부조화 (Cognitive Dissonance)의 존재들이다. 가족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인간들이다. 집에서는 무뚝뚝한데, 친구들과 어울릴 때면 세상 멋지고, 재미있고 허물없는 사람이다.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어서, 잔소리가 많다. 그러다 갑자기 알아서 잘할 거라고 뜬금 없이 아량을 베풀기도 한다. 사실 아버지들도 어떤 것이 옳은 길인지 잘 모른다. 정의롭고 양심적으로 살라고 하다가도 약삭빠르고 간교하게 살기를 원하기도 .. 2020. 8.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