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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Writing/사진과 시 Photo & Poem

비탈길

by Deposo 2020. 11. 4.

 

비탈길을 오른다. 숨이 차다. 고요한 안식 위에 몸을 뉘어본 기억이 아련하다. 혼자 떠난 길이기에 외롭고 힘겹다.

 

이미 서늘한 계절 속에 있다고 생각했는데 등을 떠미는 햇살이 맑고 따스하다. 아직 해가 지려면 멀었는데 마음은 벌써 어둠에 대한 근심의 불을 밝히고 상처가 채 아물지 않은 곳에 약간의 소금을 뿌려댄다. 내 마음이 몸부림을 친다.

 

비탈길을 늘어뜨린 산등성이 어느 즈음에서 작지만 풍성하고 기댈만한 나무 하나 만난다. 낮게 드리운 가지에 피곤한 몸을 기대고 잠시 쉰다. 오래지 않아 가지가 휘고, 더 기대면 부러질 것 같아서 몸을 거둔다. 거둔 몸을 소박하게 잘 차려입은 들풀이 두터운 땅 위에 앉힌다. 축축한 기운이 스멀거려도 흔들림은 없다. 축축함이 깊어지면 다시 나무에 기댈지도 모른다. 

 

누군가 있지 않을까 해서 소리를 질러 본다. 사방을 둘러본다. 아무도 없다. 나무를 올려다보니 새 한마리 앉아 있다. 심은 것도, 거둔 것도, 모아둔 것도, 옷도 없는 저 새는 걱정이 없을까. 생각도 없는 걸까. 어딘지 모를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 걱정이 아닌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내가 여기 있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 새를 바라보며 잠시나마 피곤함을 잊는다. 손을 뻗어도 닿을 수 없음을 알기에 그냥 바라만 본다. 대신 나무를 쓰다듬어 본다.

 

먼 길을 걸어 왔는데, 한순간 왔던 길로 되돌아가고 싶은 충동이 일렁인다. 길을 떠날 때, 돌아선 내 등 뒤에 십자가를 긋던 여인이 떠오른다. 그녀는 오늘도 기도에 의지하여 흩어진 꿈 조각들을 모아 맞추고 있을까. 끝내 찾을 수 없는 한 조각이 있을 수도 있음을 애써 외면하고 있을까.

 

어디선가 세찬 바람이 분다. 시든 나뭇잎들이 맞이할 또 다른 윤회의 시작을 재촉하듯, 가지들을 흔들며 소리를 낸다. 문득 가던 길을 멈추고 나도 나무가 되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러다 고개를 젓는다. 근심의 빛과 상처 위에 소금을 품은 이는 나무가 될 수 없다. 토해내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불같은 정열을 가진 이는 나무가 될 수 없다. 그 나무는 어느 곳으로도 가지 못하고 말라 죽을 것이다. 밤마다 꿈꾸는 걸음들이 쌓여, 겨울이 오기 전 무성한 잎들을 모두 털어내지만 결코 움직일 수 없다.

 

언제 끝날지 알 길 없는 비탈길을 다시 오른다. 잠시 서서 뒤돌아 본다. 저 나무와 새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다시 내 마음이 몸부림을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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