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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Writing/수필 Essay

겨울 바람 너머 오로라, 북두칠성 그리고 집

by Deposo 2021. 12. 16.
어느 겨울 밤, 몇일 전에 보였다던 오로라가 너풀거리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뒷뜰로 나가 보기로 했다. 아직 밖으로 나가지 않았는데도 윙윙 거리는 겨울 바람의 성화가 대단하다는걸 알 수 있었다.

블라인드를 젖히고 패티오 문을 슬그머니 열었다. 추위를 가득 머금은 강한 바람이 기다리고 있었다는듯 왈칵 쏟아져 들어왔다. 나를 쫓던 고양이 두 녀석은 움찔하며 한 걸음 뒤에 멈춰 서있었다. 연신 코를 씰룩 거리며 어두운 뒷뜰과 내 눈치를 번갈아가며 살피고 있었다. 밖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은, 요란스럽게 차가운 이 밤에도 여전한듯 했다. 나는 서둘러 데크 위로 발을 내딛고서 문을 닫았다. 두 녀석은 유리 너머에 우두커니 서있었다. 매번 당하는 일이지만 수긍하기 어렵다는듯한 표정이었다. 곧 나른한 늘어짐이 가득 배인 벤치 위의 털카펫 위로 성큼 올라설 것이었다.

Lucas Marcomini@Unsplash의 사진을 바탕으로 편집 

방향도 없이 이리저리 휘젓는듯한 바람은 은근한 짜증을 불러 일으켰다. 옷이나 머리카락에 퀴퀴한 담배 냄새가 달라붙는 것은 물론, 어렵사리 불을 붙여야 하는 수고로움도 싫었다. 오로라가 있는지 보려고 번거롭게 밖으로 나왔건만 정작 나는 담배 피우는 일에 더 신경을 쓰고 있었다. 정해진 목적지도 없이 그저 차갑고 세찬 공기를 뿌려대는 바람은, 마치 낮에 본 성난 운전자 같았다.

규정 속도를 지켜가는 앞선 운전자가, 그에게는 견딜 수 없는 증오의 대상이었다. 분노가 고스란히 담긴 운전을 하고 있었다. 일그러진 그의 얼굴은, 욕지거리를 마구 토해내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잔혹한 화풀이가 담긴 심장의 덜컹거림에 흥분되어 있었다. 아마도 그는 어떤 불안이나 두려움으로, 스스로에게 쫓기는 초조함에 사로 잡혀 있는듯 했다. 아니면 경제적인 여유가 없는 사람이었을 수도 있다.

거의 대부분, 부정적인 감정들의 창조자는 나 자신이다. 의식의 우주 속에 별안간 창조된 블랙홀 같은 분노가 다른 모든 감정과 이성을 집어 삼킨다. 나는 그 성난 운전자가 자신이 왜 그리도 화를 내고 있는지 모르거나, 이유를 알아도 해결할 방법이 없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유를 안다면 보통은 해결책을 찾는다. 때로는 이유를 알지만, 이유라고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경우도 있다. 해결할 방법이 없는 많은 이유 중 하나가 "궁핍함"이다. 벌이의 많고 적음이라기 보다는, 쓰고 싶은 만큼, 욕망하는 만큼의 경제적 여유가 없는 궁핍함이다. 수입이 늘어도 그 상태를 유지하지 못하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또 지속성을 가진다.

일반적으로 궁핍한 사람들은 시간적인 여유도 누리지 못한다. 일거리가 없거나 또는 적어서 남는 시간이 많더라도, 편안한 마음이 그들의 의식을 지배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시간이 돈으로 교환 되지 못했을 때, 사람들은 좌절과 불안으로 조급해 한다. "시간이 돈"이라는 강박관념에 눌려 있는 자본주의는, 늘 두려움에 싸여 있다. 타인과 다양한 매체들을 통해 가공된 근심 어린 정보들을 쉴새 없이 공급 받는다. 거대한 정보의 양에 비해, 의도와 실체 그리고 진위 여부에 대한 관심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한 두 건의 눈길을 끄는 사건사고가 마치 전반적인 현상인 양 과장 되기도 한다. 어쩌면 우리는, 진리라거나 진실 같은 고귀한 가치를 영원히 알 수 없으리라는 근본적인 절망감 때문에 두려워 하는지도 모른다. 궁핍하지 않은 사람들도 자유로울 수 없는 두려움이다.

간단한 화살표로 형상화될 수 있는 2차원적 존재인 바람은 심장을 가지고 있을까. 가지고 있다면 그건 화살표 중간 어디쯤에 달린, 펄럭이는 종이 조각 같은 모양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방 팔방에서 휘몰아치며, 화살표 하나로는 묘사할 수 없는 그 바람은 2차원을 초월하여 3차원적인 존재가 되어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걱정이나 부푼 기대를 머금은 짧은 생각을 가질 새도 없이 이미 잠들었을 시간이었다. 잠든 사이의 행복한 꿈으로 맞서기에는 결코 만만치 않은 세상이다. 그래도 관찰자가 되어 멀치감치 물러서서 보면 평온해 보이기도 한다. 행복한 이유들은 비슷하고, 불행한 이유들은 제각각인 집들이, "오늘이라는 방"을 나설 무렵이었다. 세상은 평온한데, 막무가내인 겨울 바람은 그 평온함을 질투하는듯 보였다. 그래서 그리도 세차게 성화를 부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 바람이 품고 다니는 두려움과 불안은 무엇이었을까. 결코 시간에 구애 받지 않을것 처럼 보였던 바람조차도 시간에 쫓기고 있었던 것일까. 기압과 기온 같은 기상 조건이 허락되는 시간 동안에만 휘몰아 칠 수 있는 저 자연 현상 조차도 시간의 강박을 이기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추위가 팔다리를 휘감고 뇌 속까지 스며들어, 집안으로 들어가는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럼에도 조금만 더 저 북쪽 낮은 하늘에 아스라이 걸쳐 있는 별 일곱 개를 보기로 했다. 혹시나 했던 오로라가 보이질 않으니 그대신 북두칠성을 살펴보기로 했다.  

Juho Luomala@Unsplash의 사진을 바탕으로 편집

'오로라'와 관련된 그 어떤 생각도 내 의식의 눈과 의식의 지평선 사이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오랜만에 눈에 담는 북두칠성은, 세차고 휘청거리는 바람 때문인지 가냘프게 떨리듯 초롱거렸다. 추운 겨울 밤하늘에 박힌 별들은 유난히도 또렷해 보인다. 차가운 공기로 생긴 엷은 눈물막 탓에 더 맑게 보이는 때문일까. 아니면 관찰자들을 의식한 별들의 우쭐거림 때문일까.

저 북쪽 하늘에 걸려있는 국자 속에 어떤 소원을 담을까 생각했다. 건강한 삶? 사랑하는 가족들의 행복? 누군가는 우리의 평범한 일상이 곧 행복이라고 했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그 말 때문인지, 가끔은 그 일상이 괴롭고 힘들어도, 행복이라고 자위하기도 한다.

틸틸과 미틸이 찾았던 파랑새도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먹고 자야한다. 자연 속에서 우리는 먹고, 입고 잘 수 있도록 돕는 것들을 충분히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이미 오래 전부터 그것만으로는 우리가 원하는 행복을 채울 수 없다. 그 결핍 때문에 우리는 그리도 산과 들판과 강과 바다를 찾으며 위안을 얻는다. 이상적인 것들은 늘 아름답다. 원하는 만큼 손에 넣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나의 행복이 단지 나의 노력이나 운 때문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때로는 나의 행복이 다른 존재의 불이익, 희생이나 불행에 따른 댓가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지금 가장 우선시 하는 행복은 철저히 물질주의의 늪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니체가 말했던 "노예의 도덕"이 지배하는 삶 속에서 스스로에 대해 대견함을 느끼는 우리는 가끔씩 회의에 빠진다.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이데아에 대한 열망 보다는, 꾸준히 발전하는 나와 이 세상을 위한 노력이 더 의미가 있어 보인다. 그런 의미 있는 일들 속에는 반드시 행복이 있다.

내가 어떤 소원을 빌어야할지 생각하는 그 짧은 시간 중에도 매서운 바람은 정신을 흩뜨려 놓고 있었다. 그래도 뭔가 하나 국자에 담고 싶은 욕심에 좀 더 있기로 했다.


저 별들은 각기 나와는 서로 다른 거리를 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2차원의 평면에서는 마치 나와 모두 같은 거리에 있는듯 보였다. 나는 잠시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세상을 지배하던 시대의 의식을 통해 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전혀 다른 위치에 존재하는 별들이 평면에서 만큼은 국자의 모양을 하고서 많은 사람들의 소망을 담고 있었다. 우주에서의 위치가 제각각인 저 별들은 흡사 우리가 가진 상념들 같이 느껴졌다. 각각의 상념들은 나의 의식 속에서 차지하는 밝기나 크기 그리고 위치도 제각각이지만, 상념이라는 범주 속에서는 그저 상념들일뿐이다. 평면화된 우주는 범주화된 상념과 다름 없고, 그 평면 우주 한 곳에 박혀 있는 북두칠성은, 수용적 관점을 반영하는 소망에 대한 객관적 상관물이다.

실제 모습과 보여지는 모습이 전혀 딴판인 어떤 대상물에 의미를 부여하고, 실체와는 상관없이 그 의미를 따르고 있다는 것이 문득 낯설게 느껴졌다. 마치 신을 의지하는 것과 같았다. 인간은 환상을 가질 수 있기에 그 환상에 얽매여, 발목의 사슬을 인식하지 못하기도 하지만, 또 그로인해 고난을 이기기도 한다. 나는 어디에 있나? 사슬이 채워져 있음을 알면서도 끊어 버리지 못하고, 환상을 거부하면서도 결별하지 못하는 곳에 서 있었다.

결국 추위를 더이상 견딜 수 없었다. 펄떡 거렸던 생각의 흔적들이 의식의 지평선 너머로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았다. 급한 마음에 서둘러 안으로 들어왔다. 소망을 담고자, 오로라에서 북두칠성으로 옮겨갔던 마음이 내가 서 있던 곳을 돌아보고 집으로 돌아왔다.

고양이 녀석들이 어디에 있는지 찾는 것은 여렵지 않았다. 한 녀석은 털 카펫 위에서, 다른 녀석은 그 옆 소파 위에 엎드린 채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곧 꾸던 꿈을 이어서 꾸다가, 물과 사료를 먹으며 내일로 생명을 이어갈 것이다.
또 사진질이네 저 인간.......의 탈을 쓴 내 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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