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글 Writing/독서 그리기 Reading Sketch

HQ 해리 쿼버트 사건의 진실을 읽고

by Deposo 2020. 10. 28.

 

글도 잘쓰는데 생긴 것도 멋지다. 1985년생.

 

   2018년 가을쯤, "YG와 JYP의 책걸상"이라는 팟캐스트를 통해 프랑스 작가인 조엘 디케르와 이 책에 대해 듣게 되었다. 그리고 2년이 다되어서야 읽기 시작했다.


  "만남"은 세상 모든 이야기의 시작이다. 해리는 놀라와 제니를 만났고, 제니는 트래비스를, 놀라는 루터와 엘리야를 만났고 그리고 마커스는 해리를 만나서 극적인 이야기를 만들어 갔다. 그리고 그 만남들은 또 기억이라는 방법으로 각자에게 남았다. 때로는 생존해 있는 기억들과의 만남으로 잠시 행복해지기도 하고 침울해지기도 한다. 이 이야기의 많은 부분들이 회상의 형식으로 그려졌다. 비록 우리의 기억이 잘 보존되어 있다는 보장은 없지만, 과거에 대한 나의 생각을 가장 나답게 표현하는 방법이 바로 우리의 기억이 아닐까.


   해리가 아직 어린 놀라와 함께 어딘가로 멀리 떠나려 했다는 사실이 처음에는 놀라웠다. 해리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아니 작가는 어떤 의도로 해리가 어린 소녀를 사랑의 대상으로 삼도록 그렸을까?

 

   변변치 못한 형편의 해리는 작가가 되어 걸작을 완성하고 싶은 다소 무모한 염원을 품고 있었다. 걸작은 쉽게 탄생하지 않는다. 어울리는 영감과 열정이 필요하다. 그것들은 평범하고 느슨한 일상에서 나오기는 어렵다. 모험적이면서 뜨겁고, 죄의식과 이성을 초월하는 미지의 영역 속에 감추어져 있다. 해리의 무의식 속에 웅크리고 있던 자신도 모르는 자각이, 창작의 숨결을 불어넣어줄 뮤즈로서 놀라를 선택하게 한 것이다. 놀라만이 자신을 막바지에 내몰린 현실로부터 건져낼 수 있는 구원자와도 같은 존재였다. 놀라만이 자신으로 하여금 걸작을 완성하여 온 세상에 유명세를 떨치도록 도울 수 있는 여신이었다.

 

   놀라는 자신이 속한 배경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고, 해리가 유일하게 도와줄 수 있는 능력자라고 여겼다. 미지의 세계에서 자신을 구하기 위해 나타난 멋진 성에 사는 왕자였다. 그랬기에 나이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렇게 두 사람은 서로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가치였다. 하지만 질문이 떠나지를 않았다.

 

   "진정한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조건은 무엇인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소설 "롤리타"의 돌로레스와 험버트인가. 험버트는 진심으로 롤리타를 사랑했던 것일까? 아니면 자신의 이상적인 이성의 모습을 어리고 순진한 롤리타에 덮어 씌운 님펫을 사랑했던 것일까? 저자인 디케르가 품고 있던 환타지를 작품 속에서 구현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1997년 개봉한 제레미 아이언스와 도미니크 스웨인 주연의 영화 롤리타

 

   사랑이라는 주제에서 빠질 수 없는 것들이 바로 치정과 질투이다. 해리와 놀라, 제니와 트래비스, 그리고 루터가 얽힌 그 실타래는 결국 놀라의 비참한 죽음을 낳았고 반면 해리에게는 뜻하지 않던 엄청난 성공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그 성공은, 평생을 기다렸던 놀라의 시신이 지척에서 발견되고 진실이 하나씩 드러나면서,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결국 해리는 모든 것을 잃었고, 본래의 초라한 모습으로 돌아가 세상이라는 무대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반면 이 이야기의 최대 수혜자는 마커스다. 마커스는 출판사와 체결한 거액의 계약에 따라 새 책을 써내야만 했다. 하지만 결국 약속된 날짜에 책을 출간할 수 없었다. 곧이어 거액의 소송에 휘말려, 작가로서의 생명은 물론 금전적으로도 큰 위기에 몰릴 처지였다. 어떤 돌파구를 빨리 찾지 못하면 지옥불에 던져질 상황이었다. 그때 마침 해리와 관련된 충격적인 사건이 알려졌다. 이 사건을 자신이 직접 조사하여 은사인 해리의 살인 누명을 벗기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해리는 살인 누명을 벗더라도 이미 소아성애자로 낙인이 찍혀 사망선고를 받은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였다. 두 사람의 사랑이 아무리 아름답고 간절했다 해도, 어린 소녀를 꼬드겨  욕망을 채우려 했던 추악한 남자로 각인된 이미지를 벗을 수는 없었다. 마커스는 이미 계산이 끝난 상태에서 해리를 위로하면서 그를 주인공으로 하는 책을 쓸 수 있도록 허락을 받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한 모든 노력은 곧 책을 쓰기 위한 취재와도 같았다.

 

   이런 와중에도 친애하는 제자인 마커스에게 이런저런 조언을 이어가는 해리가 안쓰러워 보였다. 해리의 이런 면모를 보면 타오르는 열정과 선명한 순수함을 가진 사람으로서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놀라를 사랑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대한 걸작을 쓰고 싶었지만 포기하고 놀라와 함께 도피하려고 했던 모습에서 그의 진심이 엿보인다.

   사랑의 진실성을 어떻게 가늠할 수 있을까? 그 사랑이 지속되는 기간이 중요할까? 아니면 맺어지지 못했어도 끝내 잊혀지지 않는 그런 사랑이 진정한 사랑일까? 해리와 놀라의 사랑이 순간적인 정열에 사로잡힌 무모하고 비윤리적인 사랑이었는지 아니면 끝까지 이어지는 아름답고 고귀한 사랑이었는지 판단할 수는 없다. 사랑에 있어서 윤리와 자유가 배치되는 상황이 벌어질때,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윤리와 자유의 전선은 길고 화력은 강하다.

 

   자유를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 또는 "하기 싫은 것을 피하는 것"이라 할때, 전자는 타인에 대한 책임이 우선이고 후자는 자신에 대한 책임이 우선이다. 해리와 놀라의 자유는 어떤 자유인가? "진실한 사랑을 갖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진실한 사랑을 놓쳐버릴까봐 두려웠던 것"일까?

 

   처음에 해리는 놀라에 대한 겉잡을 수 없는 정열을 잊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제니를 이용했다. 놀라와 사랑에 빠지는 것을 피하는 자유를 선택했지만 결국 자신을 다스리지 못했기에 사랑을 갖고 싶은 자유로 바꿨다. 그리고 결국 놀라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그 곳을 떠나지 못하고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었다. 반면 놀라는 엄마에 대한 병적인 죄책감에 시달리는 기댈 곳 없는 외로운 소녀였다. 무겁고 어두운 그녀의 삶속에 찬란한 태양처럼 나타나 자신을 빛으로 인도해 줄 해리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거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절박함의 무게만큼이나 버거웠던 자신에 대한 책임을 감당하지 못하고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마지막에 밝혀지는 범인들이 나에게는 큰 놀라움을 안겨주지는 못했다. 이런 종류의 반전은 꽤나 흔하게 애용되어 왔다. 일반적으로 섬세한 인과관계 없이 돌발적인 일로 인해 의도치 않게 발생되는 사건들은 식상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다행히 디케르는 돌발성과 인과관계를 적절하고도 세밀하게 엮어서 세련되게 구성했다. 다소 불필요한 사건과 상황 묘사들이 이곳저곳 보이기는 하지만 거의 대부분 사건의 흐름이나 결말과의 연관성이 없지는 않아서 그 치밀함이 돋보였다.

 

   모든 것을 걸고 사랑을 지키고 싶었지만, 바로 그 사랑 때문에 그 사랑을 지키지 못하고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서로를 가슴에 묻어야 했던 놀라해리. 두 사람 모두 더 자유롭고, 더 화려하며 외로움이 없는 세상으로의 비상을 꿈꿨다. 그 꿈은 사랑이 있었기에 꿀 수 있었지만 또한 사랑 때문에 그 꿈이 날아가버렸다. 이 세상에서 사랑을 지키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있을까. 그 사랑을 유지하는 동안 사회학적 엔트로피는 점점 증가하고 보존이나 발전보다는 파괴와 퇴색으로 흐른다는 것이 이 우주의 이치다. 이러한 무질서 정도의 증가로 인한 파멸을 막는 방법은, 끊임없는 노력과 불굴의 의지밖에 없다. 그리고 그 노력과 의지를 담보하는 유일한 존재는 또한 바로 사랑이다. 사랑을 위해서는 사랑을 해야 한다.  

 

   모든 것을 걸지 않았지만 다른 이들의 불행과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운 좋게도 사제간의 의리를 지키고 명예와 부를 거머쥔 마커스. 이 슬픈 사랑을 이루는 삼각형의 한 꼭지점을 힘겹게 차지하고서, 결국은 본의 아니게 연적이 된 놀라가 살해당하는 단초를 제공한 제니. 자신을 드러낼 수 없는 어둠 속에서 지극한 예술과 사랑에 대한 열정과 함께 불행하고도 짧은 인생을 영유해야 했던 루터. 한순간 잘못된 판단으로 자신은 물론,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힌 상대방을 처절한 불행의 굴레 속에 가두고, 지켜보면서 괴로워해야 했던 엘리야. 의도치는 않았지만 결국 세 사람의 고귀한 생명을 무참하게 짓밟은 범인들

 

사건의 진실은 밝혀졌지만, 사랑의 진실은 영원히 밝힐 수 없으리라는 생각에 조금은 씁쓸한 마음을 떨칠 수가 없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