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트 1. 옳고 그름, 우주의 의미를 푸는 실마리
2장. 몇 가지 반론
1장. 인간 본성의 법칙에서 제시됐던 두 가지 사실—첫째, 지구 위에 사는 인간은 누구나 일정한 방식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기묘한 생각을 갖고 있으며, 그 생각을 떨쳐 버리지 못한다. 둘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사람들은 그런 방식으로 행동하지 않는다—을 토대로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기 위해 ‘인간 본성의 법칙’이나 ‘도덕률’, 또는 ‘바른 행동 규범’의 개념을 확고히 한다.

우리는 모성애나 성적 본능이나 식욕 등을 통해 본능의 자극을 받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일정한 방식으로 행동하고자 하는 강렬한 바람이나 욕구를 느낀다는 뜻입니다. (...) 그러나 남을 돕고 싶은 욕구를 느끼는 것과, 자기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도와야 한다고 느끼는 것은 아주 다른 일입니다.
도덕률이 단순한 충동이 아니라 우리에게 그 충동을 따르거나 거스를지를 판단하게 하는 일종의 지시 혹은 명령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단지 행동하고 싶은 욕구가 아니라, 행동해야만 한다는 인식이 도덕률의 핵심이다.
위험한 지경에 처한 어떤 사람이 도움을 요청하는 소리가 들려온다고 합시다. 아마 여러분은 두 가지 욕구를 동시에 느낄 것입니다. 하나는 당장 달려가 도우려는 욕구요(이것은 집단 본능에서 나온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위험을 피하려는 욕구입니다(이것은 자기 보존 본능에서 나온 것이지요). 그러나 여러분은 이 두 가지 충동 외에 "도망치려는 충동을 누르고 도우려는 충동을 북돋우라"고 말하는 제3의 무언가를 내면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 도덕률이 우리가 연주해야 할 곡이라면, 본능은 단지 건반 키들에 불과합니다. 언제 어떤 키를 눌러야 하는지 지시하는 악보가 곧 피아노 건반 키 가운데 하나일 수 없는 것처럼, 도덕률은 본능들 가운데 하나일 수 없습니다
도덕률은 여러 본능 중 하나가 아니라 그 본능들을 선택하고 조정하는 기준이다. 루이스는 우리 마음속의 제3의 판단 기제가 때로는 약한 본능을 따르도록 지시한다는 점에서, 도덕률이 본능을 초월한 기준임을 설명한다.
우리가 옳은 일을 할 수 있는 동력을 얻기 위해 상상력을 일깨우고 동정심 등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집단 본능을 자극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느껴질 때가 종종 있습니다. 이처럼 한 본능을 다른 본능보다 강화시키려 드는 것은 분명히 본능에서 나오는 행동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 우리의 충동 가운데 어떤 것—이를테면 모성애나 애국심—은 선하지만, 성 충동이나 싸우려는 충동 등은 나쁘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단지 싸우려는 충동이나 성 충동을 억제해야 하는 경우가 모성애나 애국심을 억제해야 하는 경우보다 더 많은 것뿐입니다. 그러나 결혼한 남자나 군인처럼 의무적으로 성적 충동을 북돋우거나 싸우려는 충동을 북돋워야 하는 상황도 있습니다. 또 자녀를 향한 모성애나 조국을 향한 사랑을 억누르지 않으면 다른 이들의 자녀나 나라에 부당한 결과를 초래하는 상황도 있을 수 있습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충동에는 원래 좋거나 나쁜 것이 없는 것입니다.
모든 본능과 충동은 마치 인체에 필요한 영양소처럼 골고루 필요하다. 그렇다고 우리가 단지 본능에만 의존하며 살지는 않는다. 도덕률은 때와 장소에 적절하게 어떤 본능을 억누르거나 북돋아야 한다고 지시하는 역할을 하며, 이는 단순한 본능의 충동으로는 설명될 수 없다.
우리가 저지를 수 있는 가장 위험한 짓은 자신의 본성에 있는 본능 중 하나를 골라, 무슨 대가를 치르더라도 꼭 따라야 할 사항으로 절대시하는 것입니다. 절대적 지침이 된 후에도 우리를 마귀로 만들지 않을 본능은 없습니다.
매우 당연한 이야기지만 인간애조차 무비판적으로 따를 경우 정의를 무너뜨릴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는 도덕률이 모든 본능 위에 있는 기준이어야 함을 시사한다.
우리는 모두 학교에서 구구단을 배웠습니다. 그러나 사막에서 혼자 자란 아이는 구구단을 모를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구구단이 단지 인간의 관습, 즉 인간이 스스로 구성해 낸 것으로서 인간이 원했다면 얼마든지 달리 만들 수도 있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어떤 진리는 교육으로 전해졌더라도 그것이 본질적으로 참된 것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도덕률 역시 문화적 학습을 통해 전수되었지만, 그 내적 구조는 보편적 실재를 따른다.
제가 ‘인간 본성의 법칙’을 수학과 같은 부류에 포함 시키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1장에서 말했듯이 한 시대나 한 나라의 도덕관은 다른 시대나 다른 나라의 도덕관과 다를 수 있지만 (...) 그 차이는 그렇게 크지 않으며 (...) 그 모든 도덕관들을 관통하는 동일한 법칙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표면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언제 어디서나 유사한 도덕 원칙을 공유하고 있으며, 이것이야말로 도덕률이 주관이 아닌 보편적 기준임을 시사한다.
또 하나의 이유는 이것입니다. (...) 어떤 도덕이 다른 도덕보다 더 좋다고 말하는 순간, 여러분은 사실상 어떤 기준에 견주어 그 두 도덕을 판단한 것입니다. (...) 그때 두 도덕을 견준 기준은 그 두 도덕과 다른 제3의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여러분은 그 두 도덕을 '참 도덕'이라 할 만한 것과 비교함으로써, 사람의 생각에 좌우되지 않는 진정한 ‘옮음’이라는 것이 존재하며, 어떤 도덕관은 다른 것보다 그 진정한 ‘옮음’에 가깝다는 사실을 인정한 셈입니다.
우리가 도덕 간 우월이나 비교를 말할 수 있는 이유는, 그것들을 판단할 수 있는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기준, 즉 ‘참 도덕’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뉴욕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이 저의 생각보다 더 참되거나 덜 참될 수 있는 이유는, 뉴욕이라는 도시가 우리의 생각과 상관 없이 실제로 존재하는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여러분이나 제가 말하는 뉴욕이 단순히 ’내 머리 속에서 내가 그려낸 도시'라면 어떻게 한쪽이 다른 쪽보다 참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럴 경우에는 참과 거짓 자체가 아예 문제가 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바른 행동 규범’이 단순히 각 나라가 어쩌다가 승인하게 된 사항들에 불과하다면, 한 나라의 승인이 다른 나라보다 더 올바르다는 말은 의미가 없어집니다.
이 비유를 통해 루이스는 도덕률이 단순한 개인적 또는 사회적 산물이 아닌, 객관적 실재로 존재한다고 말한다.
도덕간의 차이와 사실에 대한 신념간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한 탓에 도덕간의 차이를 지나치게 과장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 분명한 것은, 우리가 지금 마녀를 잡아 처형시키는 일을 하지 않는 이유가 이제 더 이상 마녀의 존재를 믿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입니다. 즉 도덕적인 원칙에는 차이가 없습니다. 사실에 대한 생각에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마녀의 존재를 믿지 않게 된 것은 지식의 큰 진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녀가 없다고 생각해서 마녀 사냥을 하지 않는 것은 도덕적인 진보가 아닙니다. 마녀가 없다고 생각해서 마녀 사냥을 하지 않는 것은 도덕적인 진보가 아닙니다.
도덕 간 차이라 보이는 사례들 중 상당수가 사실에 대한 오해 혹은 정보 부족 때문임을 지적하며, 도덕률 자체는 마치 만고의 진리처럼 일관성을 유지해 왔다는 점을 강조한다.
결론
루이스는 논리적이고 풍부한 비유를 통해 ‘도덕률’이 인간 내면의 양심이나 사회적 학습의 결과물이 아닌, 초월적이며 보편적인 기준임을 일관되게 주장한다. 그 기준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도덕적 진보나 판단 자체를 할 수 없고, 개혁가나 선악의 차이를 말할 수도 없다.
그 초월적이고 보편적인 기준은 어디에서 왔을까?
Mere Christianity (C.S. Lewis) - 04
A reflection on moral law as a universal standard beyond instinct, based on C.S. Lewis’s argument in Mere Christianity Chapter 2.
condepark.blogspot.com
'글 > 신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순전한 기독교 (C.S. 루이스) 06 - 4장. 이 법칙의 배후에 있는 것 (3) | 2025.08.09 |
|---|---|
| 순전한 기독교 (C.S. 루이스)05 - 3장. 이 법칙의 실재성 (1) | 2025.07.30 |
| 순전한 기독교 (C.S. 루이스)03 - 1장. 인간 본성의 법칙 (0) | 2025.07.15 |
| 순전한 기독교 (C.S. 루이스)02 - 머리말 (2) | 2025.07.15 |
| 순전한 기독교 (C.S. 루이스)01 - 시작하며 (0) | 2025.07.15 |
| 다섯 가지 장벽을 넘는 기도 - CS 루이스 (0) | 2025.07.15 |
| 로마서 8장 요약 및 묵상 - CS 루이스 (1) | 2025.07.15 |
| C.S. 루이스의 세계 (17) | 2025.07.15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