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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신앙

순전한 기독교 (C.S. 루이스)02 - 머리말

by 콘데미앙 2025. 7. 15.

머리말

책이 출간된 배경

이 책에 실린 내용은 본래 방송에서 발표한 것으로서, 나중에 ≪방송 강연≫(Broadcast Talks, 1942), ≪그리스도인의 행동≫(Christian Behaviour, 1943), ≪인격을 넘어서≫(Beyond Personality, 1944)라는 세 권의 책으로 출판되었습니다.

 

어두운 방 안, 오래된 라디오와 책이 탁자 위에 놓여 있고, 벽에는 창문을 통해 들어온 빛이 십자가 형태로 비추고 있다. 창밖으로는 빅벤이 비 오는 밤에 희미하게 보인다.

 

C.S. 루이스의 『순전한 기독교(Mere Christianity)』는 제2차 세계대전 중 BBC 라디오 방송 강연에서 비롯되었다. 전쟁의 혼란 속에서 BBC는 국민에게 도덕적 위로와 영적 지침을 제공하고자 기독교 강연 시리즈를 기획했고, 옥스퍼드 대학교의 문학자이자 한때 무신론자였던 루이스가 진행자로 나섰다. 루이스는 논리적이면서도 인간적인 언어로 신앙의 본질을 풀어내며, 기독교인뿐 아니라 회의론자와 무신론자들까지도 포용하는 방식으로 강연을 구성했다.

 

이 방송은 1941년부터 1944년까지 네 차례에 걸쳐 진행되었으며, 도덕법, 기독교 신앙, 신앙인의 삶, 삼위일체 등에 대한 내용을 다루었다. 이 강연들은 방송 이후 먼저 세 권의 책으로 나뉘어 출간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방송 강연≫(Broadcast Talks, 1942), ≪그리스도인의 행동≫(Christian Behaviour, 1943), ≪인격을 넘어서≫(Beyond Personality, 1944)였다. 이후 루이스는 이 세 권의 내용을 재정리하고 하나의 흐름으로 통합하여, 1952년 『순전한 기독교』라는 제목으로 단일 저서를 출간했다.

논쟁과 논점을 피해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상의 봉사이자 유일한 봉사는, '모든 시대에 거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공통적으로 믿어 온 바를 설명하고 수호하는 일'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종교적 논쟁이나 논점을 피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세 가지 이유를 제시했다.

  1. 그리스도인들을 분리시킨 신학적 또는 교회사적인 논점은 관련된 전문가 외에는 다루지 말아야 한다.
  2. 또한 이러한 논쟁들이 불신자들을 교회 안으로 인도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3. 그리고 이러한 논점을 다루는 전문가들은 이미 많다.

루이스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상의 봉사는, '그리스도인들의 오랜 공통적인 믿음을 설명하고 지키는 것'이고, 그 실천 방안으로 방송 강연과 책 출간이라는 방법을 선택했다.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성공회 교인이었던 루이스는 '기독교 변증가'였다. '변증가'란, 이성적 설명과 논증을 통해 신앙이나 신념의 타당성을 옹호하고 설명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는 '개신교 변증가'가 아닌 '기독교 변증가'였다. '기독교인', 즉 '그리스도인'에는, 가톨릭(Catholicism), 동방 정교회(Eastern Orthodoxy), 개신교(Protestantism), 성공회(Anglicanism) 등이 모두 포함된다.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그가 살아 있기를 내가 바란다고 한들,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는 나를 따르라! 
[쉬운말 성경, 요한복음 21:22]”

 

요한의 미래가 궁금했던 베드로가 예수님께 물었을 때의 답이다. '남들 신경 쓰지 말고 그냥 네가 할 일이나 하거라.' 또는 '이론이나 논쟁에 몰두하지 말고 내가 가르친 것들을 몸소 실천해.'라는 뜻으로 들렸다.

 

로마 가톨릭에 대한 조심스러운 태도도 엿보였다.

철저한 개신교도들이 보기에 로마 가톨릭 교회의 신념은 창조자와 피조물 사이에 존재하는 엄연한 구분(피조물이 아무리 거룩하다고 해도 뛰어넘을 수 없는 구분)을 위협합니다. 즉 이것은 다신론을 다시 부활시키는 것과 같습니다. 따라서 개신교도들의 의견에 동조하지 않으면서도 반역자보다 더 나쁜 사람, 즉 이교도로 보이지 않기란 힘든 일입니다. 이처럼 동정녀에 관한 주제야말로 '순전한' 기독교를 다루는 이 책을 영락없이 망칠 만한 주제—동정녀가 낳은 아들을 하나님으로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 책을 손에 잡을 수 없게 만드는 주제—입니다.

 

종교와 교리 문제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역사의 틈바구니에 끼여 죽임을 당했나. 내게 있어서 가장 황당한 사건은 '러시아 구교도 박해(Old Believers Persecution)'였다고 생각한다.
17세기 중반, 러시아 정교회는 총대주교 니콘의 주도로 예배 형식과 전례문을 그리스 정교회의 전통에 맞추어 개정하였다. 이 과정에서 ‘알렐루야’를 두 번에서 세 번 반복하는 방식으로 변경한 것이 대표적인 변화 중 하나였다. 이에 대해 전통을 지키려는 신자들은 반발하였고, 이들은 ‘구교도(Old Believers)’라 불리며 기존의 예식과 신앙 형식을 고수하였다. 그러나 국가와 교회는 이들을 이단으로 규정하고 강하게 탄압하였으며, 그 결과 수천 명이 투옥, 고문, 화형, 혹은 자결로 생을 마감하였다. 단순한 의례의 차이가 체제 저항과 종교적 순교로 이어진 비극적 사건이었다.

 

기독교 도덕을 다룬 제3부에서의 침묵 

몇몇 문제들에 대해 침묵했지만, 그 이유는 앞서의 이유와 다릅니다. 저는 제1차 세계대전 때 보병으로 복무한 이래, 자신은 편하고 안전한 곳에 있으면서 최전선에 있는 사람들한테 이러니저러니 훈계하는 사람들을 대단히 싫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 자신이 직접 당하고 있지 않은 유혹들에 대해 여러 말 하기를 꺼리게 되었지요. (...) 제 생각에 모든 죄의 유혹을 다 받는 사람은 없습니다. (...) 저는 제가 면제받은 고통이나 위험이나 희생에 대해 단호한 입장을 취할 자리에 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또 그런 입장을 취할 의무가 있는 목회자의 직무를 맡고 있지도 않지요.

 

루이스는 통찰력과 함께 정교하고 섬세한 자세를 견지했던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지위나 권력을 가진 이들이 흔히 저지르기 쉬운 오류에 대한 경계심을 갖춘 사람으로 보인다. 이러한 자세는 '신사'라는 단어의 역사성과 사회성의 예를 들면서 —원래는 '문장(紋章)을 수놓은 외투를 입고 다니며 상당한 땅을 소유한 사람'이라는 뜻이었으나, 나중에는 '용모 단정하고 점잖은' 또는 그런 의미에서 '화자가 호감을 가진 남성'이라는 의미로 바뀜'그리스도인'이라는 규정에 끼어든 '교만'에 대한 경계에 대해 언급한다.

 

'그리스도인'이라는 단어 역시 이렇게 정신적이며 정교한 의미로, 또는 그들의 표현대로 '심화된' 의미로 사용하도록 내버려둔다면 급속도로 무용한 단어가 되고 말 것입니다. 우선 그리스도인들 자신부터 누군가를 가리키는 말로서 이 단어를 쓸 수 없게 되겠지요. 과연 어떤 사람이 가장 심오한 의미에서 그리스도의 영에 가까운가는 우리가 말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니까요. 우리는 사람의 마음 속을 들여다볼 수 없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판단할 수 없으며, 또 판단해서도 안 됩니다. 우리가 이렇게 정교한 의미에서 어떤 사람에 대해 그리스도인이니 아니니 말하는 것은 당치 않은 교만이 될 것입니다.

 

본래 '그리스도인'은 '제자들', 즉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아들인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로 안디옥에서 처음 사용되었다. 하지만 현대의 비기독교인에게 있어서 보통 사람들과 구별되는, 어떤 면에 있어서 칭찬받을 만한 교인을 지칭하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인'이라는 단어에 이미 좋고 나쁨을 구별하는 의미가 들어 있어, 다른 이들을 판단하는 데에 사용되고 있는 문제점을 지적한다. 아마도 당시 영국 사회의 문제점을 에둘러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나는 그 단어들과 얽힌 시대성은 흘려 버리고, '교만'이라는 개념에 집중했다. '나는 정의롭고 도덕적이고 믿음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흔히 빠지기 쉬운 오류가 '교만'이다. 신앙적 측면서의 이 '교만'은 '온유와 겸손'에 대비되는 개념이다. 루이스는 '신사'나 '그리스도인'이라는 단어의 문제 보다는 '교만'에 대한 경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고 생각한다.

 

'순전한' 기독교는 현관 마루

머리말 끝부분에 가장 인상적인 문장이 나를 사로 잡았다.

 

제가 말하는 '순전한' 기독교는 여러 방으로 통하는 문들이 있는 현관 마루에 가깝습니다. 누군가를 이 마루로 인도할 수 있다면, 제 할 일은 다 한 것입니다. 그러나 불과 의자와 음식이 마련되어 있는 곳은 방안이지 현관 마루가 아닙니다. 현관 마루는 기다리는 장소이자 여러 문을 열어 볼 수 있는 장소일 뿐, 계속 머물려 살 곳이 못 됩니다. (...) 그리고 현관 마루에 있을 때부터 그 집 전체에 공통적으로 해당되는 규칙들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 어떤 방문이 참된 문인지 묻는 것입니다. (...) 그리하여 마침내 자신의 방을 찾게 되었다면, 다른 방을 택한 사람들과 여전히 현관 마루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을 친절하게 대해 주십시오. 만약 그들이 잘못하고 있는 것이라면 여러분의 기도가 더더욱 필요합니다. (...)

 

궁금하다!

장장 15 페이지의 긴 머리말이 끝났다.

'순전한' 기독교라는 개념은,  '모든 시대에 거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공통적인 신념'이고, 종파나 교리에 관계없이 '그리스도인으로서 꼭 알아야 할 기독교의 핵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궁금하지 않은가?


 

Mere Christianity (C.S. Lewis) - 02

An exploration of C.S. Lewis’s Mere Christianity, its wartime origins, theological focus, and enduring relevance across Christian traditions.

condepark.blogspo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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