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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야기

코로나 시기의 이발

by 콘데미앙 2020. 9. 10.

작은 행복이야기-02

코로나바이러스로 온 세상이 몸살이다. 생존을 위한 식료품 판매점을 제외한 거의 모든 서비스가 중단된 상태이다. 공원, 놀이터를 포함한 공공시설은 물론이고 쇼핑몰, 식당, 뷰티숍 등 일상생활 속에서 자주 이용하던 공간들의 문이 굳게 닫혀 있다. 그런 가운데, 배려심이 많은 소박한 캐나다 사람들은 차분하게 덤덤하게 보내고 있다.

영화 ‘아저씨’의 한 장면. 배우 원빈이 상반신을 드러낸 채 거울 앞에서 전기 이발기로 스스로 머리를 밀고 있다. 복부에는 피가 스며든 붕대가 붙어 있으며, 배경은 어두운 실내 공간이다.
얼굴도 몸매도 나랑 참 많이 닮았다.

 

내가 아는 몇 사람은 2개월 정도 이발을 하지 못해서 덥수룩해진 머리를 달고 있었다. "스스로 머리 깎기"를 시도하기엔 위험 부담이 너무 커서 감히 도전해 보지 못한다. 가족들에게 부탁하고 싶어도, 망쳤을 때의 후환이 두려워 아무도 나서지 않을 게 뻔해 보인다. 참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나는 전혀 걱정이 없다. 지난 12년 동안 늘 그래왔듯이, 아내가 나와 아이들의 머리를 언제든지 깎을 수 있기 때문이다. 12년 전, 아내는 남성 커트 기술을 배우는 3일짜리 속성 과정을 정신없이 마쳤다. 아이들은 곧바로 아직 얼떨떨한 엄마의 실험 대상 또는 연습 대상이 되었다. 초등학교 1, 2학년의 어린 나이였지만, 자기들 딴에는 결코 맘에 들지 않는 엄마의 솜씨로 인해 무척 기분이 상했다고 한다. 아니 실제로 들은 적은 없고 나중에 아이들의 일기를 보고 알았다.

2008년 5월 17일 토요일, 어린이가 그린 가족 이발 장면. 긴 머리의 엄마가 자신의 머리를 이발 가위로 자르고 있으며, 바닥에는 머리카락이 흩어져 있다. 그 어린이는 앞을 보고 앉아 있고, 뒤편에는 아빠가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모습이 보인다. 위에는 날씨와 날짜가 표시된 일기 양식이 있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아빠를 놓치지 않다니 세심한 녀석일세

 

비록 TV에 나오는 연예인들의 멋진 머리 스타일처럼 맞춰줄 수 있는 실력은 아니지만, 항상 비교 불가한 편안함과 깔끔한 느낌을 준다. 한 달에 한 번 머리를 깎는다고 치면, 세 사람이 12년 동안 깎은 횟수는 대략 400번 정도. 머리 한 번 깎는데 팁까지 포함해서 30불 정도라고 하면, 자그마치 1만 2천 불이다. 한화로 약 1천80만 원. 와! 실로 큰 금액이다.

무엇보다도, 앞으로 오래도록 더 많은 돈을 아낄 수 있다는 즐거움과 소망을 가질 수 있어서 좋다. 아내가 오래도록 세 남자의 머리를 깎아줄 수 있기를 바라는 그런 소망 말이다.

 

2020년 5월 2일


 

Haircuts in the Time of Corona

During the COVID-19 lockdown, one man reflects on saving money—and memories—thanks to his wife's 12-year tradition of home haircuts.

condepark.blogspo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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