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글/이야기

헌 옷

by 콘데미앙 2020. 9. 10.

작은 행복이야기-01

연중 섭씨 25도 이상을 넘는 날이 30일을 조금 넘거나 심지어는 그보다 적은 해도 있는 이곳. 겨울이 지났다고 해서 굳이 두꺼운 옷들을 옷장이나 서랍에 깊숙이 가두어 두지 않는다. 가끔 5월이나 9월에도, 미친 듯이 눈이 내려 쌓이기도 한다.

 

눈 내리는 알버타의 산악 풍경. 맑은 에메랄드빛 호수와 짙은 침엽수 숲이 펼쳐져 있고, 뒤로는 눈 덮인 산맥이 흐릿하게 솟아 있다. 부드러운 눈발이 고요하게 내리는 장면이다.

그렇기는 해도, 계절이 바뀔 때마다 두께나 모양, 기능이 다른 옷들을 꺼내어 입는 일은 어떤 설렘을 안겨주는 작은 행복이다. 해마다 입었던 헌 옷임에도 불구하고, 오랜만에 보는 눈에는, 새 옷을 득템한 듯한 신선함이 기껍다.

 

겨울 외투, 니트, 바지, 양말이 가지런히 정리된 나무 옷장. 옷걸이에 두툼한 코트와 스웨터가 걸려 있고, 아래 선반에는 접힌 바지와 양말이 꽉 차게 채워져 있다.

겨울이 코앞 모퉁이를 힘차게 돌아 들어오려는 즈음, 두꺼운 옷들을 챙기며 느끼는 어떤 안도감은, 춥고 긴 겨울을 어렵사리 품어야 한다는 부담감을 덜어 주기에 충분하다. 나의 작은 행복은 헌 옷에도, 추운 겨울에도 있다.

 

2019년 11월 19일


 

Old Clothes

A reflection on the quiet joy of reusing old winter clothes and the comfort found in seasonal change, even amid Alberta’s unpredictable snow.

condepark.blogspot.com


 

' >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겨울 바람 너머 오로라, 북두칠성 그리고 집  (0) 2021.12.16
말의 가치  (2) 2021.03.09
1년 동안 켜두었던 마음  (4) 2020.10.28
여름의 흔적 - 2012  (0) 2020.09.12
코로나 시기의 이발  (0) 2020.09.10
1980년 5월 15일  (0) 2020.08.11
아버지들은 소리없이 운다  (3) 2020.08.09
개미의 에베레스트 탐색기  (0) 2020.07.11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