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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나의 비발디

by 콘데미앙 2020. 10. 25.

바이올린 하면 흔히들 파가니니 (니콜로 파가니니, Niccolò Paganini, 1782년생)를 떠올리고, 비발디 (안토니오 루치오 비발디, Antonio Lucio Vivaldi) 하면 강원도 홍천 비발디 파크나 바이올린 협주곡[각주:1]"사계"를 떠올린다. 하지만 나는 바이올린에 관한 한 단연코 비발디를 꼽는다. 바흐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Johann Sebastian Bach) 보다 더 바흐 같은 느낌을 준다고나 할까. 비발디는 1678년생으로 1685년생인 바흐 보다 7살이 더 많다. 당시에 바로크 음악을 뒤흔들었던 대표적인 음악가 세 명을 꼽으라면, 비발디, 바흐 그리고 헨델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 Georg Frideric Händel)이다.

 

비발디의 음악이 바흐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바흐의 음악이 비발디의 느낌을 준다고 하는 것이 맞다. 비발디를 존경하고 그의 작품을 사랑했던 바흐는 비발디의 현악기용 협주곡들을 건반악기용으로 편곡해서 연주했다. 이 때문에 비발디의 음악이 널리 알려졌고 더불어 유명해졌다.

 

흰색 가발을 쓴 바로크 시대의 남성이 바이올린을 들고 있는 초상화. 그는 붉은 외투와 흰 셔츠를 입고 있으며, 왼손으로 활을 쥔 채 악보 앞에 앉아 있다. 안토니오 비발디로 널리 알려진 그림이다.
이 초상화는 실제 얼굴보다 과하게 잘생겨 보이도록 그린 것 같음

 

 

비발디의 작품에는 흔히 RV라는 약자와 번호가 붙는다. RV는 (류옴 페어차이히니스, Ryom's Verzeichnis)[각주:2]의 약자로서, 독일의 페테르 리옴 (Peter Ryom)이라는 음악학자가 작품의 장르와 구성 등의 특성에 따라 분류하기 위해 붙인 번호이다. 바흐의 작품에는 BWV[각주:3]번호를 붙인다.

그의 수많은 작품 가운데서도 나는 몇 곡을 꼽는다.

 

 

1. Concerto for violin and organ, strings and basso continuo in D minor, RV541

 

 

두 대의 바이올린과 오르간, 현악기와 베이스가 어우러진 라단조 (Dm) 협주곡이다. 주 악기인 바이올린이 강약과 장단조를 타고 내달리는 그 묘미는 온몸을 전율하게 한다.

 

2. Concerto for flute, strings & continuo in E minor, RV 430

 

 

플룻이 주 악기가 되어, 차분하고 단정한 선율로 곡 전체를 이끌면서도 바로크적인 기교와 화려함이 가득한 환상적인 협주곡이다.

 

3. L'Estro Armonico, Op.3[각주:4]

 

 

 

일반적으로 “조화의 영감” 혹은 “화성의 영감”으로 번역되며, 총 12개의 협주곡 안에 40개의 악장이 담긴 비발디의 대표작이다. 누군가는 이 제목을, 전통을 상징하는 ‘조화’와 상상력을 의미하는 ‘영감’이 어우러진 개념으로 해석하지만, 나는 이 작품을 “화성의 감흥” 혹은 “화성의 흥취”라 부르고 싶다. 그만큼 이 곡이 주는 정서적 충만함과 음향의 감동은 단순한 형식 이상의 무언가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바이올린 4대, 비올라 2대, 첼로 1대 그리고 비올른 (지금의 콘트라베이스) 또는 건반악기 쳄발로 (하프시코드 Harpsichord의 이탈리아식 명칭)로 구성되어 있다. 이렇게 다채로운 구성으로 파트별 독주와 합주를 번갈아 가며 수 놓는 그 선율 위를 걷거나 달리면, 주체할 수 없는 감흥이 넘쳐난다. 가끔은 숨이 막히고, 정수리에서 척추 아래까지 터지듯 솟아 나와 흘러내리는 그 감동과 흥분은 살을 떨리게 한다. 때로 눈동자의 등 뒤에서부터 불현듯 스며 나오는 눈물로 가득 차기도 한다. 

그 선율의 길에는 비가 내리기도 하고 바람이 세차게 불기도 한다. 어느 악장에서는 따사롭고 잔잔한 햇살이 온 세상을 비추면서, 풍성하고 푸른 나무 아래에 그늘을 드리우기도 한다. 합주곡 모음인데도 1시간 30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이어지는 선율은 마치 장엄한 한 편의 오페라를 감상한 듯한 착각마저 들게 한다. 단지 발랄하고 생동감이 가득하기만 한 것이 아니다. 생동감이 넘치는데도 애절한 느낌이 들고 엄숙함이 무거운데도 은근한 명쾌함이 미소를 짓게 하는 숨겨진 매력이 가득하다.

활을 이용하는 현악기에서 켜져 나오는 그 마찰음의 묘미. 손과 손가락을 사용하여 음정을 길게 당기는 듯 끌다가 놓아주는 절묘한 소리의 묘미가 있다. 때로는 당기고 놓음을 반복하면서 물고기의 부드럽지만 힘찬 뒷지느러미의 움직임과도 같이 선율을 휘두른다. 

음정 하나하나 모두를 머릿속에 다 담고 싶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길이 남을 바로크 시대의 명곡 중 하나다.

수십 년을 들어도 느끼는 감동은 전혀 늙지 않는다. 번뇌와 물욕에 지치고, 어린아이처럼 위로가 간절한 때, 간결하고 깊은 감동으로 위안을 주는 절대 명곡이다.


 

My Vivaldi

Why Vivaldi outshines even Bach in violin music. Explore RV541, RV430, and L’Estro Armonico’s unmatched Baroque brilliance.

condepark.blogspot.com


 

  1. 협주곡 즉, 콘체르토는 모두 3개의 악장 (Movement)으로 구성되는데 처음과 마지막 악장은 빠르고 경쾌하다. 중간 악장은 다른 두 악장보다 느리면서 서정적인 소리로 구성된다. 협주곡은 카덴차 (Cadenza) 형식을 사용하는데 이는 주 악기의 독주가 곡 중간중간 곁들여지는 형식을 말한다. 그 악기만이 가진 특별한 소리의 아름다움과 연주자의 자유롭고 화려한 기교를 맛볼 수 있는 순간이다. [본문으로]
  2. “Ryom’s Verzeichnis”는 클래식 음악에서 모차르트의 작품을 정리한 루트비히 리터 폰 쾨헬 (Ludwig Ritter von Köchel)의 쾨헬 페어차이히니스 (KV, Köchel-Verzeichnis, 쾨헬 목록)와 유사하게, 안토니오 비발디(Antonio Vivaldi)의 작품들을 분류한 류옴 페어차이히니스 (RV, Ryom-Verzeichnis, 류옴 목록)을 말한다. [본문으로]
  3. BMV (Bach Werke Verzeichnis)는 바흐의 작품들을 체계적으로 분류한 작품 번호 목록이다. 영어로 Bach Works Catalogue라고도 불린다. 이 번호 체계는 1950년에 독일 음악학자 볼프강 슈마이데(Wolfgang Schmieder)가 처음 편찬하였으며, 바흐의 모든 기악곡과 성악곡을 장르별로 구분하고 번호를 부여한 것이다. BMV 번호는 작곡 시기 순이 아니라 장르별 분류에 따라 지정되므로, 숫자가 크다고 해서 나중에 작곡된 것은 아니다. [본문으로]
  4. 비발디가 작곡한 12곡의 협주곡 모음집으로, 비발디가 32세 되던 1711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출판업자 에티엔 로제(Estienne Roger)에 의해 초판 출간되었다. 작품 제목에 붙은 Op. 3는 Opus 3을 의미하며, 이는 작곡가의 작품 순서에 따라 부여된 출판 작품 번호다. Opus (오우퍼스, oʊ.pəs) 는 라틴어로 ‘작품’을 뜻한다. 비발디의 경우 실제 작곡 순서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지만, Op. 3는 그의 세 번째 출판 작품집임을 말한다. 이 작품집은 비발디의 작품 가운데 최초로 국제적인 주목을 받은 출판물로서, 특히 젊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J.S. Bach)에게 깊은 영향을 끼쳤으며, 바흐는 이 가운데 몇 곡을 직접 편곡하기도 했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구성인 8개의 현악기 (바이올린 4대, 비올라 2대, 첼로 1대, 비올론 혹은 쳄발로)를 통해 독주와 합주를 유기적으로 엮으며, 새로운 콘체르토 형식을 선도했다. 비발디 특유의 생동감 넘치는 선율은 발표 당시 큰 반향을 일으켰고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유럽 전역의 궁정과 교회에서 널리 연주되며 비발디의 명성을 확립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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