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paza
『결혼(Noces, 1939)』에 등장하는 티파사
알베르 카뮈가 1939년에 발표한 산문집 『결혼(Noces)』은 4편의 산문 (티파사에서의 결혼, 제밀라의 바람, 알제의 여름, 사막)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중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이 바로 〈티파사에서의 결혼(Noces à Tipasa)〉이다.
여기서의 "결혼"은 남녀 간의 혼인이 아니라, 인간 존재와 자연, 삶과 세계가 하나 되는 감각적 결합을 뜻한다. 티파사는 이 감각적 결합이 실현되는 거룩한 공간, 말 그대로 존재와 자연의 결혼식장이자 성소로 묘사된다.
티파사에서의 결혼 – 자연과 존재의 합일
카뮈는 젊은 날 알제리의 지중해 연안 도시인 티파사(Tipasa)를 찾아가며, 이곳의 햇빛, 돌, 바다, 로마 유적, 허브 향기 속에서 이성이나 신의 계시가 아닌, 오직 육체와 감각을 통해 존재의 충만함을 경험했다.
"나는 여기서, 세상이 아름답다는 확신과, 나 자신이 세상의 일부라는 생각에 기뻐 떨었다."
— 『결혼』 中 〈티파사에서의 결혼〉
그에게 티파사는 고통과 죽음조차 감싸 안는 삶의 본질을 일깨워주는 장소였으며, 신이 없는 세계에서도 삶이 충분히 신성하고 충만할 수 있음을 증명하는 장소였다.
유적과 햇빛, 부조리 속의 긍정
카뮈는 이곳에서 유적들을 바라보며 죽은 과거의 흔적을 통해 살아 있는 현재의 아름다움을 인식한다. 그가 말하는 '부조리(absurde)'는, 티파사에서 만큼은 저항이 아니라 수용으로 바뀐다. 그는 세상의 의미 없음 속에서조차도, 살아 있음 자체의 기쁨을 감각적으로 찬미다.
티파사는 알제리의 티파사 지방의 최대 도시이며 아프리카 대륙의 최북단, 지중해 남쪽 연안에 가로로 길게 자리하고 있다.


로마제국 시절에는 티파사 Tipasa로 불리웠다. 1857년 경부터 근대 도시가 형성 되었으며 주로 고대 로마 시절 건설되었던 건축물들의 폐허와 모래 해안이 인상적인 곳이다.






로마제국 말기에는, 바실리카 Basilica 양식의 큰 교회가 세 개나 있었던 기독교의 중요한 중심지였다.

성 크리스피누스(Crispinus, 또는 크리스피노)와 성 크리스피니아누스(Crispinianus)는 로마(Roma)의 귀족이자 형제이다. 서기 285년경, 그들은 성 퀸티누스(Quintinus)와 함께 프랑스 지방으로 복음 선교 여행을 갔다가 수아송에 정착하였다고 한다. 낮에는 그들이 전교활동에 전념하고, 밤에는 구두 수선공으로서 열심히 일했다. 프랑스 지방을 방문했던 막시미아누스 황제의 명에 따라 그들은 릭티오바루스(Rictiovarus) 앞으로 끌려갔다. 그는 그리스도교의 박해자였으며, 이 형제들을 고문하다가 죽이려 하였으나 거듭 실패하자 그들에게 자살하도록 명하였다. 그러나 막시미아누스 황제가 이들 형제를 참수하였다. 그들은 제화공의 수호성인이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 GoodNews 참조]


알제리 티파사(Tipasa)의 고대 로마 유적지 중 중심 도시 구역의 전경을 보여준다. 바다를 마주한 주요 유적지에는 바실리카, 주택, 공공 목욕탕, 도로 등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이곳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배경에는 지중해와 아틀라스 산맥 일부가 보인다.
바실리카 Basilique는 고대 로마 시대에는 종교적 건물뿐 아니라 공공 집회나 재판이 열리던 다목적 건물을 의미했으며, 후에 기독교 교회 건축 양식으로 이어진다.






모리타니아 왕립 능묘(The Royal Mausoleum of Mauritania)는 알제리 티파사 인근에 위치한 고대 원형 왕릉으로, 기원전 1세기경 클레오파트라 7세와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딸인 클레오파트라 셀레네와 그녀의 남편 유바 2세 왕을 위해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서 말하는 '모리타니아'는 현대의 모리타니 공화국이 아니라, 고대 북아프리카의 모리타니아 왕국(Mauretania)을 가리키며, 현재의 알제리 북부와 모로코 일부 지역을 포함하는 베르베르계 고대 왕국이었다. 이 능묘는 누미디아, 로마, 헬레니즘 양식이 융합된 독특한 건축물로, 로마 제국과 북아프리카 간의 문화적·정치적 연계를 상징한다.



로마가 정복하기 전에는, 초기 철기시대에 가나안 지방에서 이주해 온 서 페니키아인들의 무역 거점이었다.
서기 41년부터 54년까지 로마제국을 통치했던 클라우디우스 황제가, 현재의 서부 알제리 지역에서부터 대서양 연안 지역을 차지하고 있던 모리타니아 Mauretania 왕국을 정복하기 위한 군사기지를 건설했다.
4세기 경, 약 2만 명 정도가 거주했을 것으로 알려져 있다.








430년 경, 스페인의 이베리아 반도와 북부 아프리카 그리고 지중해의 일부 섬에서 세력을 형성하고 있던 게르만계 반달족에 의해 티파사는 파괴 되었다. 이로부터 한 세기가 지난 후 비잔틴 제국에 의해 재건 되었다.
7세기 말, 이슬람 우마이야 왕조의 공격으로 다시금 폐허가 되었다가 19세기인 1800년대에 와서야 근대적인 도시로 재탄생하게 된다.
알제리는 1830년부터 1962년가지 프랑스의 식민지였으며, 카뮈는 이때 지명이 몽도비 Mondovi였던 현재의 드레앙 Dréan에서 1913년에 태어났다.
티파사는 드레앙에서 차를 타고 서쪽으로 6시간 정도 이동하면 되는 거리에 있다.


기념비에는, "여기서 나는 사람들이 영광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는다. 그것은 거리낄 것없이 사랑할 권리."라고 씌여 있다. 이 문장은 "티파사에서의 결혼"에 있는 글귀이다.
Tipaza Algeria *0010
Albert Camus’s Tipasa: Roman ruins, the sea, and a sacred union of nature and being in this UNESCO World Heritage site in Algeria.
condepark.blogspo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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