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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데미앙

콘데미앙은 누구인가

by 콘데미앙 2020. 7. 4.

출생에서 두 아이의 아비가 되기까지

1960년대 어느 한 해에 가까스로 출생. 소위 386 세대인데 머리 회전도 386[각주:1] CPU 등급임.
음악, 미술 그리고 문학을 좋아했지만, 뭐든 재미있다고 착각한 상태에서 가리지 않고 가까스로라도 해보려고 발버둥 침.


고교 시절엔 멋진 그룹사운드에서 멋진 퍼스트 기타에 멋진 리드 보컬로 멋지게 이름을 날리고 싶었으나, 가까스로 비슷하게 흉내만 내려다가 접음. 그래도 키보드, 베이스 기타 등을 만질 줄은 앎.
초등, 중등, 고등학교를 우스운 성적으로 졸업하고, 남들 하는 건 다 해보기 위해 재수 1년을 거쳐 가까스로 대학에 진학. 나중에 알아보니 꼴찌에서 2번째였음.


대학 1학년 때는 왜 태어났고 뭐 하고 살아야 하는지 궁금해서 무작정 헤매고 다님. 대학 2학년 때부터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돌팔매질, 화염병질, 구호질 하다가 급기야 학사경고의 문턱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음. 3학년 1학기를 말도 안 되는 성적으로 가까스로 마치고 우여곡절 끝에 군에 소집됨.


훈련소에 있는데 사령부라고 불리는 왠지 멋지게 느껴지는 데서 온 뺀질기가 줄줄 흐르는 중사 한 명이 찾아와 타자 칠 줄 아는 놈 손들라고 했음. 동생 타자기로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까지 만 약 백번은 쳐본 경험이 있는 나는 단지 손을 들었을 뿐이었음. 그로 인해 행정병으로서 "사령부"에 자대 배치는 "잘" 받았는데 타자를 "잘" 칠 줄 모른다고, 매일 생명의 위협을 당하며 강도 같은 훈련을 받음. 1주일 만에 타자를 "잘" 칠 수 있도록 개조됨. 그 후 "뺀질이"라는 별명을 훈장처럼 달고서 고참들의 갖은 천대와 멸시와 핍박을 당함. 가까스로 군대에서 퇴출 당한 후 "공부란 걸 해보자, 이제는 쫌"이라는 각오로 가까스로 전공책을 다 외움. 그 무식함이 하늘을 감동하게 했는지 3.48이라는 상상조차 할 수 없던 학점으로 막판 역전 분위기의 아우라 속에 가까스로 졸업함. 친구들이 "과외를 받았음이 틀림없는 비열한 샊이"라고 비난하기도 함.


졸업 전후, 남들은 철썩철썩 합격해서, 쑥뽕쑥뽕 다 들어가는 이 회사 저 기관 다 낙방하다가 가까스로 한 회사에 취직하면서 내 인생의 키워드는 "가까스로 XX하다"가 아닐까 염려하기 시작함. 그로부터 사회생활 시작, 끈적한 월급쟁이의 인생이 시작됨. 나의 감각과 관심은 모두 무시하고 그냥 늘 별로였던 이 사회에서 강요하는 "올바른 시민이 되는 것이 신상에 좋을 것이다 샊야 웨이"에 올라탐.

그 시작된 첫 해의 여름 어느 날에 아버지 돌아가심. 당신의 무거운 어깨, 눈꼽만큼이나마 가볍게 해 드리기도 전에 차가운 소주 한 잔 함께 나눌 시간 없이 매정하게 훌쩍 떠나버리심.
"뭐가 그리 급하셨나요? 아버지"
당신이 어떤 분이신지도 모른 채 보내드림. 졸지에 총각 가장이 되면서 시작된 내 인생의 시련기를 가까스로 거쳐냄. 덕분에 일탈을 꿈꾸던 내 욕망의 아가리는 강제로 묵념당함.

 

그렇게 시련을 통해서 더욱 성숙하고 신중한 성인으로 거듭나는 해피엔딩 분위기의 드라마나 영화처럼 될 법도 한데, 그 이후로도 철딱서니 없는 삶을 끈질기게 이어 나감. 여행 좋아한답시고 한겨울에 밤 산행을 수시로 시도하다가 길을 잃고 얼어 죽을뻔한 적도 있음. 말도 못 하게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님. 대략 10개국 정도를 싸돌아다니며 한국인의 위상을 드높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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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이라면 사족을 못 쓰고 여자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체질이었음. 그렇게 싸돌아다니고 설치고 다니고 흥청망청, 어영부영, 설렁설렁, 탕자탕자 거리며 살던 30을 훌쩍 넘긴 어느 즈음, 장가 안 가면 "너 죽고 나 죽자 시방[각주:2]."이라는 어머니와 상당수 친척의 협박 속에 하루하루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가까스로 살게 됨.

주위에 있는 인간의 형체를 가진 모든 존재가 최소 한 번씩은 소개팅 또는 선을 주선해 주는 희망과 절망이 수시로 교차하는 바쁘고도 혼란스러운 세월을 겨우겨우 (가까스로 대신 써봄) 보내게 됨. 그 소개팅이나 선이라는 게 주선 들어올 때마다 혹시나요, 약속 잡을 때마다 오묘한 기대요, 할 때마다 실망이요, 돌아설 때마다 본전 생각인 것을.


35명째의 만남을 치르고 난 어느 날, 겨우겨우 (왠지 안 어울리지만, 그냥 씀) 굳게 결심함.
"다시는 선이고 소개튕기고이고 뭐고 보지 않을 테다"
그렇게 직장 후배들이 "콘결추위 (콘데미앙 결혼 추진위원회)"를 결성하여 위원회 활성화 명목으로 수 십 차례에 걸쳐 향응을 제공 받았고, 그 결과 통장 잔액이 바닥에 나뒹굴며 땡강을 피우는 지경에 이를 즈음이었음.
계열사 직원들과의 연석 점심 회식 자리에서 지금의 아내를 발견하게 됨. 뛰용~ 뛰용~ 속절없이 튀어나온 나의 두 눈을 겨우겨우 (가까스로 보다는 좀 나은 거 같음) 애써 진정시키고, 그 자리에서 바로 결심함.
'너는 내 꺼야!!!'
그날 이후 5개월 동안 모니터링 작업에 들어감. 내 거라고 찜한 지 6개월이 되려는 시점에 심금을 울리는 이메일을 지금의 아내에게 가까스로 날림. "꼬옥끼오...... 제게 기회를 한 번만 주세요"라고.


첫 만남 이후 결혼까지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만남. 허구허날 만나서 음주가무를 일삼던 친구들 그리고 오고 가는 향응에 쩔어 있던 콘결추위 위원들 모두 다 내동댕이치듯 관계 청산함. 고무줄 끊어진, 헐고 누리끼리한, 빨아봤자 빨래 비누가 아까운 빤스 버리듯 내던져버리고, 담배도 가까스로 끊고...... 사람이 너무 갑자기 변하면 죽는다고 주위 사람들이 협박하고 그랬음.
첫 만남 이후 5개월쯤 지나 결혼식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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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시간과 돈 그리고 인간애를 갈구며 갈구하며, 작은 것에 행복해하고 큰 것에 놀라워하며 사람과 세상을 가까스로 어쩌다가 사랑하며, 정의는 반드시 구현될 것이라고, 나 말고 누군가가 구현할 거라고 입만 나불거리며, 행동은 이기적으로 살고 있었음.

 

두 아이의 아비가 된 후 한반도를 뜨기까지

 

30대 중반 이후 우여곡절이 많았음. 세상이 급변함. 
 
연공서열이라는 공식 속에서 안주를 씹으......  안주 한 접시하며 살아가는 것을 당연시하던 대한민국 백성들 앞에 외환 위기, 국가 부도, I am F라는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But, 나의 대학 시절 친근했던) 거대한 괴물들이 한꺼번에 전광석화와 같이 등장함. 대한민국의 모든 것이 바뀌었다고 해도 과음이......  과언이 아닐 정도로 탈바꿈함. 굳게 닫혀있었던 금융 및 경제 시장의 대문이 한쪽은 충격에 의해 부서진 채로, 다른 한쪽은 마지못해 안에서 개방한 상태로 열림. 나라가 통째로 강도질 당한 느낌.

 

그 후 국민이 갱제와 금융에 대해 새롭게 눈을 부릅뜨면서 물신 숭배 분위기가 급격히 확산함. 벤처 열풍이 불어닥침. 재테크 광풍이 불어닥침. 부자가 될 건덕지가 전혀 없는 사람한테도 자꾸 "부자 되세요"라고 사방팔방에서 떠들어대는 바람에 정말 무리를 해서라도 뭔 짓거리를 하면 부자가 될 것만 같은 착각을 강하게 심어 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투자, 투기가 난무함. 뭐든 그 시류를 따라 하지 않는 인간은 미래가 없는 인간처럼 보였음.

착각에 빠진 우매한 백성들이 주머닛돈 쌈짓돈까지 죄다 털어 내놓게 하고선 그걸 기다리고 있던 대형 또는 거대 자본 괴물들이 개미 하끼 학기? 할끼 핥기처럼 낼름 낼름 흝어가는 분위기가 시작됨. 그 괴물들이 그 이전에는 주로 국내산이었는데 그 이후부터는 다국적 괴물들로 확대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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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광풍의 언저리에 살짝 걸터앉은 콘데미앙은 기업 떠나 벤처 회사로 옮김.
입사한 지 5개월 만에 사내 분규가 터짐. "힘이 없는데 굳이 또 바른길을 걸으려고 노력까지 해서 으짜쓰까"라고 여겨지는 분위기의 사람들 쪽에 서 있다가 오래 버티지 못하고 퇴사 당함.

초고수 경지의 놀고먹기 기술 보유자로서 몇 개월을 탕자탕자 탱자탱자하며 놀다가, 이 사람 저 사람 소개로 이 회사 저 회사 전전함. 이때부터 나의 커리어 상태가 복구 불가의 영역? 경지? 처지? 몰골? 행태? 지경으로 진입함. 업태 및 종류도 다양해서 미주알 고자알 고주알 썰을 풀면 엄청 재미있겠으나 후일을 기약하고 여기서는 그냥 중략으로 넘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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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예전 직장 상사의 도움으로 다시 다른 큰 기업으로 가까스로 복귀함. 열정적으로 일함. 존경할 만한 좋은 선배들과 유능하고 헌신적인 후배들을 만나서 알차고 보람 있는 직장생활을 하게 됨.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사회생활 중 좋은 기억들이 가득한 그런 시간이었음. 늘 그렇지만 봄날은 짧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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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의 부족함 대신, 나의 진면목...  진면모를 알아주지 않는 사람들 탓을 하며, 무겁고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됨. 더불어 40대로 접어드는 길목 전후에 엄습하는 사추기를 겪음.
그간 열심히 살아왔지만 빈 잔, 빈손뿐인 자신의 모습이 유난히도 무기력해 보이는 새끼 시기. 다가올 미래에도 뾰족한 수 없이 지난 세월처럼 또 빈손뿐일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이 먹구름처럼 드리우며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는 새끼 (아! 자꾸) 시기. 지금까지 해왔던 일이 아닌 무너가 뭔가 새롭고, 창의적이고, 획기적이고, 운명적인 것을 해보고 싶은 열망도 함께 꿈틀거리는 시기. 더 늦으면 평생 다시 시도해 보기 어려울 것만 같은 생각이 가득한 새끼시기. 이런 나의 심오하고 차원 높은 생각을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고 도움이 1도 안 된다는 섭섭함이 모두를 마뜩잖은 존재들로 치부해 버리게 하는 시기. 기어들어 가서 버러우 탈 동굴을 파는 시기.

그 일환으로써, 내가 내 맘대로 내 생각대로 나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여자 (떽!!!) 사업을 찾아보기 시작함. 여러 사업 아이템과 소규모 자영업 등 할만한 것을 찾아 이리저리 뒤지고 다님. 더불어 더더더[각주:3]더더더더더더더더더 가족의 소중함에 대해 새롭게 각성하는 시기였기에 이곳저곳 함께 구경하러 다니며 수없이 많은 사진을 찍어보기도 함. 그러는 동시에 혼자서도 엄청나게 쏘다님. 매주 자전거, 스키, 사진 찍기 등으로 눈코 뜰 새 비빌 새, 후빌 새 없이 바쁘게 보냄.


심지어는 대학원을 끊어서 다니기 시작함. 오랜만에 공부하는 곳에 가보니 학구적인 분위기보다는 물질주의 분위기가 흘러넘치는 느낌이어서 씁쓸했음. 학원이라 그런지 학원비가 무지 비쌌음. 내게 있는 모든 것을♬ 아깝지만 뺏기네~♩ 기분이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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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모를 확신을 찾기 위해, 어떤 깨달음을 얻기 위해 나름대로 열심히 지냈음. 그러나 윤곽이 드러난 것은 없이 회사 일은 점점 더 힘들어지고 그곳을 떠나고 싶은 생각만 가득하게 됨. 전과 14범이 최고 권력자가 될 것만 같은 불길한 기운이 나라 전체를 휘감음. 대다수의 사람이 갱제와 물질에 너무 집착하는 것만 같아 보였음.  

귀가 얇고, 조급하며, 제 한 몸 돌보기조차 힘겨운 민초들. 홀로는 보잘것없어도 모여서 지혜롭고, 용감하고, 나라를 구하고 역사를 써온 민초들. 김수영이 노래한 그 (들) 풀 같은 민초들.
개나 돼지 같은 가축 취급을 받고, 수 없이 속임을 당하고, 짓밟히고, 억눌리고, 착취를 당하는 민초들. 그래도 또 일어난다 민초들. 미친 민초들. 우매하면서도 현명하고, 비겁하고 소심하면서도 용맹스러운 민초들.
때로는 자신을 사지로 내몬 국가 (또는 국가를 대리하는 자들)라는 실체 없는 존재를 구하기 위해 온몸을 바치는 아이러니한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민초들. 그 어리석고도 위대한 민초 자신들을 구렁텅이로 빠뜨리는 선택을 할 것만 같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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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콘데미앙은 국개 굳게 결심함. 보이는 그 뭔가를 잡으려 해도 도무지 잡을 수 없는 그 유리벽에 쌓인 방을, 아이러니한 굴레를, 오랫동안의 굴곡으로 지친 이 산하를 떠나기로 함.

아이엘츠 (IELTS) 시험 보고, 캐나다의 한 기술전문학교에 입학 허가 신청한 후 허가를 기다리는 동시에 연방 기술이민 신청함. 입학 허가받고, 신체검사 받고, 짐 싸 보내고, 주변 정리하며, 돌이킬 수 없는 새로운 도전을 준비함.

결심한 후 5개월이 채 안된, 6월의 어느 날, 평생을 함께 살아오신 어머니의 통곡과도 같은 울음소리를 애써 외면하며 집을 나섬. 그날 우리는 태평양을 건너 캐나다에 도착함.


...중략...

 

늘 시간과 돈 그리고 놀고먹는 삶을 갈구며 갈구하며, 작은 것에 시시해하고, 큰 것에 놀라는 척하며, 사람과 세상을 사랑한다고 자신을 세뇌하며, 정의는 구현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나 말고 누군가가 노력해서 될 거라고 생각만 하며, 행동은 이기적으로 살고 있었음.

- Possibly To be continued -

  1. 80년대 후반 경 컴퓨터계를 주름잡던 386 CPU (중앙연산처리장치)의 속도가 33MHz (메가헤르츠)라고 치면 현재 잘 나가는 컴퓨터의 CPU, 인텔 i9급의 속도가 3GHz (기가헤르츠) 정도 되고 이는 386 CPU 보다 151.5배 정도 빠름 [본문으로]
  2. 여기서 "시방"은 우리가 흔히 화가 나서 욕하고 싶지만, 그 수위를 조절하기 위해 "씨방"이라고 유화 내지는 위장한 그 "씨방"이 아니라 "이제", "지금"이라는 의미의 사투리임. [본문으로]
  3. 들어본 사람만 아는 "더더더" 타령으로서, 주로 어두운 밤에 짭새들이 이 길 저 길을 막은 채로 지나가는 운전자들을 느닷없이 붙들고서 입에 혹시나 남이 이미 드럽게 빨았을지도 모를 빨대를 물리고 자꾸 더 세게 불라고 성화를 부릴 때 부르는 소리임.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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