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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Writing/소설 Novel

이웃집 클로이-03

by Deposo 2020. 12. 28.

   앤은 가끔 조나단과 전화 통화를 한다. 앤이 손님을 맞이하거나, 숙박 손님이 떠난 후 뒷정리를 하느라 바쁠때는 조나단이 건 전화를 받지 못하기도 한다. 조나단은 클로이의 안부가 궁금해서 전화로 확인하곤 한다.  클로이만 생각하면 그저 안쓰러울뿐이다.


   클로이의 친엄마인 앤은 에어비엔비로 생계를 꾸리고 있다. 조나단은 클로이의 친아빠지만 지금은 함께 살지 않는다. 컴퓨터 게임을 즐겨하는 앤에게는, 늘 집에 있으면서 할 수 있는 에어비엔비 운영이 천직인냥 여겨진다. 1층에 있는 서재를 개조한 방 1개와 워크아웃 형태로 된 지하에 있는 방 2개를 포함해서 모두 3개의 방을 손님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지하에는 욕조가 딸린 욕실과 간단한 취사 시설이 되어 있어 가족이나 4명 정도의 일행이 머물기에 적합하다. 워크아웃은 주택의 정면에서 보면 대개 2층으로 보이고 후면에서 보면 3층으로 보이는 구조. 즉 지하 1층이 후면에서는 지상층이 되는 주택구조로서, 독립된 세대로 활용이 가능한 구조이다. 앤과 클로이는 2층에 있는 안방과 그 보다 조금 작은 방을 각각 쓰고 있다. 예약이 들쑥날쑥 하기는해도 월평균 수입이 2천 6백 달러 정도 된다. 이 중에 주택 담보 대출금을 갚는데 들어가는 1천 달러 정도를 제외한 나머지를 생활비와 약간의 저축을 위해 쓰고 있다. 3만 달러 정도되는 저소득자 소득금액 기준을 맞춰가며 저소득 혜택도 놓치지 않기 위해 손님 예약을 조절하기도 한다.


   앤은 클로이가 12살이던 해에 동거하던 폴과 헤어진 이후부터 지금까지 8년 동안 진지하게 사귀거나 만난 남자가 한 명도 없다. 그 남자가 누구이든간에, 관계를 맺고 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 모두 덧없고 귀찮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앤은 이제 40살이지만  어깨와 허리 그리고 골반 주위의 고질적인 통증으로 고생하고 있다. 고등학교 때 축구를 하다가 크게 다친 이후 통증과 함께 살아오고 있다. 그러는 가운데서도 통증을 참으며 장시간 컴퓨터 앞에 앉아 게임을 즐긴다. 게임은 그녀가 바라는 것들을 이루어주지는 못하지만 느낄 수 있게는 해준다. 이미 망쳐버렸다고 여기고 있는 자신의 삶을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이 어디엔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실낱 같은 희망을 주기도 한다.

 

 

치명적인 아름다움과 우수 그리고 짙은 갈색의 모험이 있다.

 


   '어차피 현실세계에서 꿈만 꿔야될 것들이라면, 게임 속에서라도 누려보는게 낫지. 게임이면 뭐 어때. 내가 느끼는 건 어차피 마찬가진데......' 

 

   게임을 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앤에게는 어느 것이 진짜 현실인지 애매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지금 앤이 푹 빠져 있는 게임은 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지 (Life is strange)이다. 앤은 게임 속의 주인공인 맥스가 되어 친구인 클로이와 함께 미스테리를 풀어가는 사건과 모험의 주인공이 된다. 맥스와 클로이는 18살짜리 소녀들이다. 문제를 해결하고 의혹들을 풀어가는데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을 사용한다는 점은 앤이 최고로 좋아하는 부분이다. 더군다나 게임속의 배경은 앤이 좋아하는 계절인 가을의 색과 분위기가 짙다. 가을은 그 어느 계절보다도 앤에게 어울리는 계절이다. 가을은 아직 겨울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도 후회하고 있는 과거의 돌이킬 수 없는 결정들이, 테이프를 떼어낸 부위에 남은 끈끈이 처럼 앤의 의식 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그 과거의 시간들이 남긴 끈끈이의 끈적임이 집요한 만큼, 게임은 더욱더 매력적이다. 조나단과 처음으로 사랑에 빠지게 된 때나, 폴과 친해지면서 보냈던 초기의 기억들이 꿈 속에 나타난다. 그때마다 앤은 조나단과 폴이 있는 곳으로부터 벗어나려 안간힘을 쓴다. 하지만 마음처럼 빨리 움직이지 않고 제자리에서 허우적대는 다리로 고통스러워하다 잠에서 깨곤 한다.


   이 게임에 너무 빠져들어서 정신을 차려야겠다는 생각으로 최근에는 가끔씩 제페토 (Zepeto)라는 3D 아바타 게임을 해보기도 한다. 하지만 만화 스타일의 캐릭터와 가상세계의 그래픽이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느낀다. 모험적이기 보다는 사교적인 요소로 앤 자신의 취향과는 맞지 않다. 그래도 가끔은 맘에 맞는 가상 세계의 친구들과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면 기분전환이 되기도 한다. 원인과 의미를 전혀 알 수 없는 불안감과 두려움을 잠시 잊을 수 있다.

 

   클로이가 8살이 되던 해의 어느 날


   조나단은 욕실에서 샤워를 하고 있었다. 으례히 분신처럼 들고 다니던 그의 핸드폰이 식탁 위에서 부르르 떨며 움직거리고 있었다. 식탁에 앉아 그림을 그리던 클로이가 그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려 핸드폰을 보았다. 그리고 건조기에서 빨래를 꺼내고 있던 엄마 앤에게로 들고 갔다.  


   "엄마 전화요"
   "이거 내꺼 아닌데, 아빠 어딨니?"
   "이층 욕실에 있어요"
   "아빠한테 갖다줄래?"
   "네"
   "아, 잠깐만. 이리줘봐"


   앤이 클로이에게서 핸드폰을 건네 받아 누구에게서 온 전화인지 확인하려는 순간 전화는 끊겼다. 그리곤 잠긴 화면 위에 부재중 전화 1통의 알림이 떠있었다. 조금전 조나단이 정수기에서 물을 받아 마시고, 그림을 그리는 클로이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 놓고 간듯했다. 전화가 끊기기 바로 전  언뜻 보였던 발신인의 이름이 갑자기 궁금해졌다. 에이치 (H)로 시작되는 이름이었던것 같은데 분명치 않았다.


   "클로이, 이거 아빠한테 갖다 드려라"


   그림을 그리던 클로이는 말없이 의자에서 일어나 휴대폰을 받아들고 이 층 욕실로 올라갔다.


   '에이치 (H)...? 누구지? 해롤드?'

    
   조나단의 직장 동료 해롤드라고 잠시 생각했다. 하지만 그날따라 왠지 모르게 발신자가 누군지 신경이 쓰이는 자신이 좀 의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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