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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Writing/소설 Novel

이웃집 클로이-02

by Deposo 2020. 12. 18.

   챨스릿지 커뮤니티는 대략 1970년대 중반에 형성된 동네이다. 당시의 방식대로, 커뮤니티 내에 같은 모양으로 지은 집은 단 한 채도 없다. 돈 할아버지와 패트리샤 할머니 둘이 사는 집은, 그 주변의 집들과 마찬가지로 1975년에 지어진 2층 집이다. 현재 70대 중반인 이 노부부가 결혼하면서, 새로 지은 지금의 집으로 입주한 이후 40여 년 동안 살고 있다. 그동안 딸 둘과 아들 둘이 모두 장성하여 독립해 나갔지만 이들은 가족들의 모든 추억을 간직한 채 그 집을 지키며 살고 있다. 40여 년의 세월만큼 자란 커다란 나무들이 둘레에 많다. 그런 나무들 사이로 크고 작은 새들의 지저귐과 다툼, 청설모를 닮은 다람쥐와 귀엽지 않은 토끼들의 조심스러운 출몰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노부부의 집 서쪽에는 클로이가, 동쪽에는 지미가 살고 있다.

 

   지미는 하루의 대부분을 책을 읽거나 글을 쓰고 관심 분야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면서 보낸다. 지미는 많은 책을 읽지만 그중에서도 공상과학 소설을 좋아한다. 특히 최첨단 기술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 관련 기사나 미래 학자들의 전망, 평행우주 그리고 양자역학과 관련된 방대한 정보를 모으고 있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와 우주와는 전혀 다른 세계관을 바탕으로 쓰인 소설을 즐겨 읽는다. 그래서 지미는 존 스칼지의 작품들을 무척 좋아한다.

 

   지미가 워털루 대학의 컴퓨터 공학과에 진학한 이유도 바로 그러한 관심 분야와 연관성이 있다. 지미는 자신의 상상력을 좀더 기술적이고 첨단화된 방향으로 발전시키고 싶어 한다. 기초과학 분야나 이론 물리학을 통해서도 가능하겠지만, 컴퓨터를 통해 실현 가능한 인간과의 유기적 결합이나 연동에 대한 관심과 기대가 특히 크다. 지미는 일런 머스크를 존경하고 그의 이론과 상상력을 모방하고 싶어 한다. 거대한 상상력을 현실화시켜가는 거침없는 추진력과, 예상치 못했던 난관을 돌파하는 과감한 행보는 지미가 가장 본받고 싶어 하는 일런 머스크가 가진 최고의 장점으로 꼽는다.

 

   그런 지미가 지난 5월에 1학년을 마친 후, 1년을 쉬면서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보기로 한다. 굳이 대학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자신이 원한다면 멋진 작가가 되는데에는 큰 지장이 없다고 생각을 한다. 사실 꼭 작가가  되고 싶은 것도 아니다. 정확히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명확하지가 않다. 그러면서도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되는 분야가  있기는 하다. 수준이 높거나 인기가 좋은 공상과학 소설을 대상으로, 문학적인 면은 물론 기술적인 부분까지 분석하는 것이다. 이를 일반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SF 문학 평론" 분야를 개척해 보고 싶은 생각이다.  지미에게는, 대학교육 체계가 숨 가쁘게 변하고 발전하는 현재의 추세와는 동떨어진 느낌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교육 내용과 학생들이 따로 노는듯한 분위기 속에, 결국 졸업장을 위해 다니는 대학이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워털루 대학교

 

 

   워털루 대학은 토론토에서 서쪽으로 약 120 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워털루에 위치하고 있다. 가족들이 있는 캘거리로부터 3,300 킬로미터 떨어진 거리다. 무엇이든 조용히, 자유롭게 하는 것을 좋아하는 지미에게 있어서 대학생활은, 울긋불긋한 색깔의 실 서너 가지로 대충 엮어놓은 한여름에 입는 반팔 스웨터 같다. 불편하고 어수선한 기숙사, 말라서 딱딱해진 빵 같은 강의들, 진심도 느낌도 없는 겉치레의 말들 그리고 직업훈련소 같은 서글픔이 지미가 품고 있는 짧은 대학생활의 초상들이다.

 

   지미가 고등학교 10학년을 마치고 난 여름방학이 막 시작된 어느 일요일 오후

 

   지미의 아빠 존은 지난 1년 여 동안 일하고 있던 건설 현장으로 돌아가기 전에, 아내인 앰버와 이야기를 나눈다. 주중에는 현장에서 숙식하며 일을 하고, 주말에 집으로 돌아왔다가 일요일 오후에 다시 돌아가곤 했다. 차로 3시간이 조금 넘는 거리다. 존이 일 주일 정도 먹을 음식들을 커다란 아이스박스에 챙겨 담던 앰버가  존에게 말했다.

 

   "참, 잊어버리고 말을 못했는데, 이번 화요일부터 지미가 YMCA에서 수영 강좌 받기로 했어"

   "어, 그래?"

   "응, 얘가 맨날 책만 읽느라, 밖에 나가기는커녕 방에서도 안 나오잖아. 그래서 이번에 수료증 따면 아이폰 새 걸로 바꿔준다고 했거든. 그랬더니 한다고 하더라고."

   "와, 좋은 생각인데. 맨날 뭘하는지 모니터만 들여다보고 있던데. 잘했네. 일한다고 애들 챙기지 못해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존은 앰버가 챙겨 놓은 아이스박스를 들고 드라이브 웨이에 세워둔 트럭으로 나르며 한숨을 쉬듯 말했다.

 

   "아, 이번 주에는 고객사 임원들한테 프로젝트 중간 보고가 있는데 걱정이야. 회의가 잘되야 할텐데."

   "잘되겠지 뭐. 운전 조심해서 가. 도착하면 바로 연락 주고."

 

 

YMCA

 

 

   그리고 이틀이 지난 화요일 오후에  앰버는 수영강좌가 있는 YMCA에 지미를 데려다주었다. 지미가 차에서 내려 건물의 정문을 향해 걸어가는 사이 앰버는 막 출발하고 있었다. 앰버의 차가 떠나자마자 곧이어 그 자리에 정차한 앤의 차에서는 클로이가 가방을 챙겨 서둘러 내리고 있었다. 앤이 조금 격앙된 어조로 클로이에게 뭐라고 말을 했지만 클로이는 아무 반응 없이 그냥 입구를 향해 빠르게 걸어갔다.

 

  "에이 씨......"

 

  고개를 숙인 채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던 클로이의 입에서는 나지막이 불만 섞인 탄식이 튀어나왔다. 클로이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을, 중학교 9학년을 마친 그해의 여름방학은 이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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